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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97

흔들리는 너와집 과거시험에 아홉번 낙방한 송백기 용소에 몸던지려는 찰나에 어디선가 풍덩 소리가… 달이 네개다. 검푸른 밤하늘에 하나, 용소에 또 하나, 백기의 두눈에 고인 눈물 속에도 달이 하나씩 어른거린다. ‘스물두살 송백기는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구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 못 마셔보고, 여자 손목 한번 못 만져보고, 이렇게….’ 백기가 용소에 뛰어들려는 순간 ‘풍덩’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눈물을 닦고 건너편을 봤더니 누군가 용소에 먼저 뛰어들어 휘도는 물살에 감겨 옷자락이 맴도는 게 아닌가. 백기는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어 옷자락을 붙잡고 소용돌이와 사투를 벌였다. 죽을 힘을 다해 나뭇가지를 잡아 용소 밖으로 빠져 나와 물 속으로 뛰어든 사람을 보니 산발한 여인이다. 입에 입을 대고 숨을 불어넣고 가슴을 짓눌렀.. 2021. 2. 7.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주막집 장대비 쏟아지던 날 밤 천둥 번개 치고 비가 퍼붓듯 쏟아지는데 주막집의 사립문 앞에서 누군가 울부짓는 사람이 있었다. “영업 벌써 끝났소.” 자다가 일어난 주모는 안방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 때 열두어살 먹어 보이는 사동이 나와서 사립문을 열어보니 한사람이 흙담에 등을 기댄 채, 질척거리는 흙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고주망태가 된 술꾼인 줄 알았는데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가시넝쿨 속을 헤맸는지, 옷은 찢어 졌고 삿갓은 벗겨졌고 도롱이는 비에 흠뻑젖어 있으나 마나다. 사동이 그를 부축하며 뒤뜰 굴뚝옆에 붙어있는 자신의 쪽방으로 데려갔다. 내일이 장날이라 장사꾼들이 빼곡하게, 새우잠을 자는 객방에는 자리가 없었을 뿐더러 흙투성이를 방에 들이게 할 수도 없었다. 사동이 반평도 안되는 자기 방.. 2021. 2. 5.
수달토시 나무꾼 총각 만복이가 장터에서 한지게 가득한 나뭇짐을 지게작대기로 고아놓고 그 옆에 앉았는데 비단 치마에 검은 장옷을 걸친 고운 아낙네가 물었다. “얼마요?” “참나무라 한지게에 오전입니다요.” “한지게만 살 것이 아니라 뒤꼍 처마 밑을 가득 채우려니 에누리 좀 해주시구랴.” “그렇다면 아궁이에 넣기 좋게 톱질 도끼질을 해서 처마 밑에 쌓는 것은 공짜로 해드리겠습니다.” 만복이는 지게를 지고 아낙네를 따라갔다. 양지바른 산자락 아래 외따로 떨어진 기와집이었다. 이튿날부터 만복이는 십리나 떨어진 집에서 참나무를 지고 와서 아낙네 집 뒤꼍에 부려놓고 굴뚝에 바를 정(正) 자를 써나갔다. 서른지게를 부려놓으니 산더미다. 모두 석자짜리라 톱으로 반을 잘라 한자 다섯치 길이로 만들고는 도끼로 패서 두쪽 네쪽으로 .. 2021. 1. 20.
보쌈 #조주청의사랑방이야기 보쌈 오실이는 남동생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청상과부다. 시집가서 1년도 안돼 신랑이 죽자 친정으로 돌아와 아버지 병 수발을 다하고 지금은 동생을 서당에 보내고 있다. 친정을 일으켜 세우는 게 목표라 여기저기서 혼처가 들어왔지만 오실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실이 남동생이 어느덧 열여섯 장부가 됐다. 오실이는 동생을 장가보내 집안의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에 매파를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부모 없이 오누 이만 산다는 게 걸림돌이 돼 혼담이 깨졌다. 어느 날 저녁 매파가 제 발로 찾아왔다. “좋은 혼처가 나왔네.” 오실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파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게 어딥니까? 색싯감은 몇살이고요?” “동생이 아니고 자네 혼처야.” 오실이는 방구들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저는 .. 2021. 1. 16.
정절 부인을 품은 젊은 도둑 깊은밤 자하문 고갯마루에서 순라군들이 도둑을 잡아 포박하여 초소에 데려갔다. 그런데 초소에 데려간 도둑을 조사하자 품속에서 옥노리개가 달린 은장도가 나왔다. 순라군이 어디에서 훔쳤느냐고 묻자 묵묵부답이던 도둑이 훔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육모방망이로 도둑의 배를 찌르며 순라군이 물었지만 도둑은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순라군 조장이 관솔불 옆에 가서 은장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은장도의 자루에 ‘정절부인 김관욱 처’ 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었으며 김관욱은 평안감사로 가 있는 김대감이다. 용머리 장식한 은장도에 노리개도 보통 옥이 아닌 녹옥이라 범상치 않다 했더니 팔판동 김대감 부인의 패물이라 순라 조장이 소리쳤다. 순라 조장이 도둑은 우리가 처리할 사안이 아니고 의금부로 .. 2021. 1. 8.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와 금비령(禁備嶺) 박문수는 영조(英祖)때 명 어사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울산 출신으로 울산 문수암에서 기도하여 낳았다하여 이름을 문수(文秀)라 지었다. 문수보살 (文殊菩薩)처럼 지혜가 박식하여 많은 중생을 구하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이라 한다. 어느 때 박문수는 어명으로 민정을 살피던 중 초행 길로 지리를 전혀 모른채 경상도 풍산땅에 들어갔다. 풍산은 산령이 풍부하고 험준한 산악지역이었다. 산이 너무 험하고 고개가 높아서 한번 넘어본 사람은 다시는 넘지않는 재(嶺)로 유명했다. 풍산은 지금의 경북 안동시 풍산읍으로 임진왜란 극복을 진두지휘한 명재상 류성룡의 본관이 바로 이 풍산 류씨 성씨의 고향으로 하회마을을 세거지로한 명문이기도 하지요. 어사 박문수가 풍산의 이 험한 고개를 넘다가 그만 지쳐 쓰러지게 되었다. ''일어.. 2020.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