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97 박눌 이야기 전라도 나주 땅에 "김한"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자는 처녀고 유부녀고 가리지 않고 그저 얼굴만 반반하면 수하 잡놈들을 시켜 끌고와 겁탈을 했다. 겁탈당한 여자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이 고을 사또라는 위인은 빗발치는 민원에 김한을 찾아와 그 앞에 꿇어앉아 한다는 말이 “어르신, 제발 유부녀만은…...” 보료에 삐딱하니 앉아 장죽을 문 김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건방진 놈, 네놈 할 일이나 하지 쓸데없이 참견이야. 썩 꺼지지 못할까" 나주 사또는 김한의 눈 밖에 나 결국 옷을 벗고 물러났다. 도대체 김한은 누구인가? 그는 연산군 애첩의 큰오빠였던 것이었다. 박눌이라는 신관 사또가 부임하러 나주 땅에 들어 섰건만 누구 하나 마중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신관 사또의 기를 꺾으려는 김한이 영접하러 나가는 자는 각오하.. 2021. 6. 3. 며느리의 사위가 된 시아버지 이초시는 마흔둘에 홀아비가 되었다. 설상가상, 이초시의 외아들도 장가간 지 1년 만에 시름시름 앓더니 제 어미를 따라가 버렸다. 홀아비 시아버지와 청상과부 며느리 둘이서 대궐 같은 큰 집에 살려니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이초시는 대가 끊어지고 홀아비가 된 자신의 신세도 처량했지만, 청상과부 며느리를 보면 가슴이 찢어졌다. 이초시는 장날마다 며느리를 위해 동백기름, 박가분, 비단옷감에 깨엿이며 강정이며 주전부리를 사다 줬지만 며느리 얼굴에 깊게 서린 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는 이초시가 며느리를 불러 앉혔다. “얘야, 이대로 세월만 축낼 수는 없다. 네가 개가할 자리를 찾아보자.” 그 말에 며느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아버님을 혼자 두고 제가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이초시도 목이 메어 말을 잇.. 2021. 5. 28. 외눈박이를 죽여라 어릴 때 친구들과 죽창놀이를 하다가 한쪽 눈을 잃어버린 외눈박이는 어른이 되어 수완 좋게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다. 외눈박이가 약재를 사러 영월로 가는 길에 짧은 가을 해가 떨어지자 산골짝엔 금방 어둠이 내렸다. 외눈박이는 산적이라도 만날세라 전대끈을 바짝 조였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멀리 주막집 불빛이 보여 정신없이 내달려 사립짝을 흔들었다. 주모가 엉덩짝을 흔들며 마당을 가로질러 나와 사립을 열었다. “어이구, 추워. 하룻밤 자고 가리다. 저녁을 못 먹었으니 닭 한마리 잡아 주시오.” “그런데 손님, 손님방에 지금 군불을 지피면 시간이 한참 걸리고 저녁상 차리는 것도 늦어집니다요. 괜찮으시면 안방 위칸을 쓰시면 어떻겠습니까?” “괜찮소. 아무 방이나 뜨뜻하면 됐고, 저녁상이나 빨리 차려 주시오.” .. 2021. 5. 28. 큰 것이 탈 이대감은 양반 가문에 천석꾼 부자이자 학식도 깊어 나라의 요직이라는 요직은 빠짐없이 두루 거쳤다. 이목구비 뚜렷한 백옥 같은 얼굴에 허우대도 훤칠해 모두가 그를 우러러봤다. 연회라도 열릴 때면 기생들이 서로 이대감을 차지하려고 안달을 했다. 삼남일녀 자식들도 모두 달덩이 같은 얼굴에 서당에서는 글을 잘해 훈장의 총애를 받으며 쑥쑥 자랐다. 이대감의 부인 또한 절세미인에 양반집 규수로 자라 정숙하고 조신한데다 사군자를 잘 쳐 장안에 이대감 부인의 그림 한장 받으려는 사람들이 목을 빼고 기다렸다. 이대감 부부는 금슬도 좋아, 뭇 대감들이 하나같이 어린 기생 머리를 얹어 주고 딴살림을 차렸는데도 이대감은 오로지 부인뿐이다. 마흔이 넘은 요즘도 별방을 쓰지 않고 매일 밤 안방에서 한 베개를 베고 자며 삼일 도리.. 2021. 5. 28. 두고 온 조끼 황첨지네 집에서 5년이나 머슴 살다 새경으로 밭이 딸린 산 하나를 얻어 나온 노총각 억쇠는 산비탈에 초가삼간 집을 짓고 밤이고 낮이고 화전을 일구어 이제 살림이 토실하게 되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어느 겨울날 오후 군불을 잔뜩 지펴 뜨뜻한 방에 혼자 드러누워 있으니 색시 얻을 생각만 떠올랐다. 그때 “억쇠 있는가?” 귀에 익은 소리에 문을 여니 황첨지 안방마님이 보따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마당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억쇠는 맨발로 펄쩍 뛰어내려 머리에 인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그저께 김장하며 자네 몫도 조금 담갔네.” 억쇠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선 채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자네 살림은 어떻게 하나 어디 한번 보세.” 마님은 부엌에 들어가 억쇠가 만류해도 들은 체 만 체 흩어진 그릇을 씻.. 2021. 5. 27. 일곱째 날, 첫 여인 큰뜻을 품고 과거 보러 가려는 선비… 먼길에 목숨잃을까 걱정돼 도인 찾아 죽음을 피하는 방도 듣고 떠나는데… 젊은 선비가 과거를 보러 먼 길을 나서려니 걱정이 앞섰다. 산골짝에는 산적들이 들끓고 저잣거리엔 왈패들이 활개를 치는 어수선한 세상에 천리길을 떠나려니 절로 한숨만 나왔다. 선비는 '주역'을 서른여섯번이나 읽었다는 명리학자를 찾아갔다. 흰 수염을 쓰다듬던 노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떠나지 말게. 장한 뜻을 품고 떠나는 길에 죽을 운이 기다리고 있어.” 선비가 애원했다. “꼭 가야 합니다. 죽을 운을 피할 수 있는 방도를 알려주십시오.” 도인은 육갑을 짚어보고 오래도록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하지만 실행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야.” 며칠 뒤, 젊은 선비는.. 2021. 4. 20. 이전 1 2 3 4 5 6 7 8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