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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97

큰코의 설음 #조주청의사랑방이야기, 큰코의 설음 음사를 몹시 좋아하는 한 여인이 있었다. 평생 소원이 양물이 큰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상말에 코가 크면 양물도 크다는 말을 듣고 코 큰 사람을 한번 만나야겠다고 별렀으나. 좀처럼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하는 수 없이 하루는 그 앞마을의 장날이라. 장날에 나가면 사람도 많이 모일 테니 그중에는 코가 큰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 생각하고 장에 나가서는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의 코만 유심히 쳐다 보았으나 그럴싸한 사람은 한 사람도 발견 못하고. 마침내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니 실망하여 내가 생각하는 것은 한갓 부질없는 소원이로구나 하면서 발길을 집으로 돌리려는데. 삿갓을 쓴 농부가 행색은 보잘것 없으나 술이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서 갈지 자 걸음을 걷는데. 쳐어.. 2020. 12. 26.
관찰사의 객고 풀이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관찰사의 객고풀이 강원도 관찰사가 영월로 가는 행차는 요란하다. 오색 깃발이 청명한 초가을 하늘에 펄럭이고 나팔 소리는 산골짝에 울려 퍼졌다. 말을 탄 관찰사는 늠름 우람한 체구에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검은 수염은 소슬바람에 휘날린다. 그런 관찰사가 영월에 당도했다. 마을 십리 밖에서 기다리던 현감이 관찰사를 모셔 왔는데, 영월 공관이 지난여름 수해 때 지붕이 무너져 크게 수리를 하고 있는 터라 할 수 없이 큰 기와집인 오진사 집에 거처를 정했다. 오진사 집 사랑방에서 한참 쉬고 나자 저녁 나절 현감이 와서 관찰사를 모셔 나갔다. 오진사 내외는 관찰사가 주연을 마치고 나면 으레 수청 기생을 데리고 올 거라고 여기고 넓은 금침을 펴 놓았는데, 밤늦게 돌아온 관찰사 일행에 수청 기생은 .. 2020. 12. 26.
스님과 보살 기별도 없이 한양에서 아들 식구가 내려왔다. 홀어미 밑에서 자라 무과에 합격해 금위영에서 일하는 외아들이 아리따운 제 처와 깐밤 같은 손자 두놈을 데리고 고향 영동땅으로 어미를 찾아온 것이다. 아들의 큰절을 받는 서천댁은 그저 흐뭇할 뿐이다. “어머님, 이번에 제가 함경도 회령 병마절제사로 발령받았습니다.” 아들은 승진을 기뻐하는데, 어미는 머나먼 변경으로 아들을 보내려니 걱정이 앞섰다. “무신은 변경에서 4~5년 근무해야 한양에 돌아와 요직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외적과 마적이 떼로 우글거리는 변방에 처자식을 데려갈 수 없어 며느리와 손자들은 본가에 맡겼다. 손자 두 녀석은 첫날부터 제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잠자리도 안방 할머니 곁에 잡았다. 닷새를 고향집에서 쉬고 내일이면 홀로 함경도로 떠나갈 .. 2020. 12. 16.
코 큰 사윗감 혼기가 찬 외동딸을 시집보내려고 이 총각 저 총각 선을 보던 홍대감이 마침내 허우대 좋고 글 잘 쓰고 집안 좋은 박서방을 찍었다. 홍대감의 안방마님이 사위가 될 박서방 을 불렀다. 이것저것 물어보니 박서방은 안방마님 마음에 쏙 들게 시원시원히 대답했다. “홍대감의 주위 분들을 둘러보면 먹고 살 만한 사람치고 첩살림 안 차린 사람이 없네. 그러나 우리 홍대감은 한평생 남의 여자 치맛자락만 봐도 얼굴을 돌리시네.” 안방마님의 말에 박서방은 “저도 여자 때문에 패가망신한 경우를 여럿 봤습니다” 하며 서슴없이 대답했다. 사윗감 면접을 보고 나서 안방마님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가지 미심쩍은 곳이 있었다. 안방마님은 저녁에 홍대감이 퇴청 해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자 사윗감을 불렀던 얘기를 꺼냈다. “박서방이 대감을 .. 2020. 12. 16.
와이로(蛙利鷺) 고려시대 의종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僥倖)히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여,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런데 그 집(이규보)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했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智識)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주모에게 외딴 집(이규보 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과거(科擧)에 낙방(落榜).. 2020. 7. 10.
좋을지 나쁠지 하느님만 안다 좋을지,나쁠지 하느님만 아신다 황해도(黃海道) 해주 사또인 어판득은 근본이 漁夫(어부)이다. 고기잡이배를 사서 선주가 되더니 어장까지 사고, 해주 어판장을 좌지우지하다가 큰 부자(富者)가 되었다. 그는 어찌어찌 한양에 줄이 닿아 큰돈을 주고 벼슬을 샀고, 평양감사 휘하에서 알랑방귀를 뀌다가 마침내 해주 사또로 부임했다. 그는 그렇게도 바라던 고향 고을의 원님이 되어 권세도 부리고 주색잡기도 몰두해 봤지만 별로히 즐겁지 않았고 뭔지 모를 허망함만 남을 뿐이었다. 처서도 지나고 가을바람이 소슬히 불어오던 어느날, 사또는 동헌(東軒)에 앉아 깜빡 졸았다. 사또는 어판득이 되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끌어올렸다. 조기떼가 갑판 위에 가득 펄떡이자 그도 조기더미위에 드러누워 껄껄 웃었다. 꿈을.. 2020.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