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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

외눈박이를 죽여라

by 진밭골 2021. 5. 28.

  어릴 때 친구들과 죽창놀이를 하다가 한쪽 눈을 잃어버린 외눈박이는 어른이 되어 수완 좋게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다. 외눈박이가 약재를 사러 영월로 가는 길에 짧은 가을 해가 떨어지자 산골짝엔 금방 어둠이 내렸다.

 

외눈박이는 산적이라도 만날세라 전대끈을 바짝 조였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멀리 주막집 불빛이 보여 정신없이 내달려 사립짝을 흔들었다. 주모가 엉덩짝을 흔들며 마당을 가로질러 나와 사립을 열었다.

 

“어이구, 추워. 하룻밤 자고 가리다. 저녁을 못 먹었으니 닭 한마리 잡아 주시오.”

“그런데 손님, 손님방에 지금 군불을 지피면 시간이 한참 걸리고 저녁상 차리는 것도 늦어집니다요. 괜찮으시면 안방 위칸을 쓰시면 어떻겠습니까?”

“괜찮소. 아무 방이나 뜨뜻하면 됐고, 저녁상이나 빨리 차려 주시오.”

 

마당가에 객방이 대여섯개 늘어섰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어 모두가 싸늘한 냉방이라, 외눈박이는 부엌 아궁이 구들이 이어진 안방 위칸에 두루마기를 벗어 걸었다. 안방과 위칸 사이엔 장지문이 있어 그런 대로 다른 방이 되었다.

 

부엌에서 닭 멱따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후 푸짐한 저녁상이 올라왔다.

반주로 탁배기 한되까지 마신 외눈박이는 상을 물린 후 전대를 풀어 베개 밑에 묻고 자리에 누웠다. 앞산에서 부엉이가 음산하게 울었다.

 

그때, 사립짝 방울이 울리자 주모가 달려 나갔다. 쿵쿵 마당을 밟는 소리로 봐 덩치 큰 사내임이 분명했다.

안방으로 들어온 사내는 탁배기를 마시는지 콸콸거리더니 꺼억 하고 거하게 트림을 했다.

 

잠시 후 불이 꺼지더니 남자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깔린 목소리로

“외눈박이를 죽이자”고 하자 주모가 “급하기도…. 잠도 안 들었어요.”

 

그 말에 외눈박이는 문을 박차고 마당을 가로질러 도망쳤다.

“저놈 잡아라!”

뒤꼭지에 달라붙는 소리를 들으며 외눈박이는 산속으로 냅다 뛰었다.

 

숨이 목까지 차올라 주저앉았더니 짚신도 신지 않은 발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옷도 찢겨 걸레가 되었지만, 전대는 옆구리에 차고 있었다.

 

낙엽을 파고들어가 오들오들 떨면서 하룻밤을 보낸 외눈박이는 날이 새자 영월 관가로 갔다.

동헌에 주막집 연놈들이 잡혀 왔다. 사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네놈들이 손님을 죽이고 전대를 뺏으려 했겠다!”

“사또 나리, 그런 적이 없습니다.”

“네놈이 외눈박이를 죽이자고 했잖느냐!”

 

그 말에 주모와 덩치 큰 사내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덩치 큰 사내가 얼굴을 돌려 이방을 불렀다. 다가간 이방에게 사내가 귓속말로 뭐라고 말하자

 

“우헤헤헤” 이방이 배를 잡고 꼬꾸라졌다.

사또가 “무엄한지고!” 고함을 지르자 계단을 오른 이방이 사또 귀에 대고 무언가 소곤거렸다.

 

“푸하하하!” 사또도 폭소를 터뜨렸다.

송사는 유야무야로 끝났다.

 

그날 밤, 사또가 부인의 옷고름을 풀면서

“부인, 외눈박이를 죽입시다” 하자

 

부인이 의아해, “외눈박이가 뭡니까?”

“부인이 잡고 있는 양물이오. 들어갈 때 기세등등하던 외눈박이가 부인의 음호에서 온갖 재주를 부리다가 죽어서 나오지 않소!”

 

부인도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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