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97 콩 한홉 천석꾼 부자 황참봉은 틈만 나면 지난 여름 홍수 때 개울에 빠져 익사한 셋째 아들 묘지에서 시름에 젖는다. 셋째는 자식들 중에서 가장 품성 좋고 똑똑해 초시에 합격하고 과거 준비를 하던 아끼 던 아들이었다. 맏아들은 장사한다고 논밭을 팔아 평양으로 가더니 기생과 살림을 차리고 하인을 보내 돈만 가져갔다. 그 많던 돈 을 기생 치마 속으로 다 처박아 넣고 계속 장사 밑천이 모자란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둘째놈은 과거 보겠다고 책을 끼고 있지만 낮에는 책을 베개 삼아 잠만 자고 밤이 되면 저잣거리 껄렁패들과 어울려 기방 출입으로 새벽닭이 울어 서야 몰래 들어왔다. 세간 날 때 떼어 준 옥답을 야금야금 팔아 치우는 것이다. 첫째며느리는 남편이 평양 가서 하는 짓을 뻔히 알고 있는 터라 자신은 사치 스럽게.. 2021. 7. 24. 까마귀 고기 곽서방 새색시는 눈코 뜰 새 없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대식구 아침식사 준비하랴 설거지할 틈도 없이 새참 만들어 함지박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논매기를 하는 들판으로 달려갔다가 부리나케 집에 와 점심 준비하랴 바쁘다. 막걸리 걸러서 오후 새참 들고 가고 저녁 준비하고 별 보고 빨래하고 나면 삼베적삼이 땀에 절어 등짝에 척척 달라붙어도 멱 감을 힘이 없어 안방에 들어가 쓰러진다. 문제는 녹초가 되어 눕자마자 잠 속으로 빠져드는 새색시의 하루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여름이라 식구들은 멍석을 깔고 마당에서도 자고 마루에서도 자고 안방에서도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자는데 새색시가 답답해서 눈을 비벼 보면 신랑 곽서방이 그 육중한 몸을 덮쳐 쿵덕쿵덕 절구를 찧고 있었다. 치마를 올리고 고쟁이를 벗기는 것도 새.. 2021. 7. 24. 백과부 옥정리에 과부 하나가 흘러 들어왔다. 동구 밖 산 아래 외딴집에 똬리를 튼 백과부는 당장 이백여가구나 되는 동네 남정네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지아비가 복상사를 했다네.” “누가 그러던가?” “이 동네 저 동네 발길 닿는 방물장수가 그러대.” 느티나무 아래 장기판은 시들해지고, 열기는 온통 백과부에 관한 밑도 끝도 없는 뜬소문에 쏠렸다. 가끔씩 집 밖으로 나와 모습을 보이는 30대 초반 백과부의 도톰한 입술과 흘겨보는 눈매엔 색기가 흘렀다. 매듭끈으로 졸라맨 허리는 잘록하고 두쪽 방둥이는 탱탱하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살짝 얽은 곰보 부엌데기 처녀를 데리고 술을 팔기 시작했다. 주막이 생긴 것이다. 동네 남정네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호시탐탐 백과부 치마 벗길 기회를 노렸다. 친구들과 닭볶음탕 안주에 탁.. 2021. 7. 24. 나루터 주막 무실댁은 아이 못 낳는다고 시집간 지 4년 만에 시댁에서 쫓겨났다. 시아버지가 그래도 경우가 있어 며느리에게 가볍지 않은 전대를 주어 보냈다. 친정에서 묵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밭뙈기 딸린 초가삼간을 구해 볼까 하다가 도저히 혼자서 농사지을 자신이 없어 한숨만 쉬고 있는데 시집 쪽으로 먼 친척 아지매뻘 되는 나루터 주막 안주인이 찾아왔다. 무실댁 손을 잡고 아지매가 눈물을 훔치며 위로하는 바람에 무실댁도 치맛자락을 적셨다. “질부야. 모질게 살아야 된다. 아무도 믿지 말고 너 자신만 믿어야 된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아지매가 본론을 꺼냈다. “한양에서 포목점을 하는 맏이가 올라오라 해서 애 아부지가 주막을 다른 사람 손에 넘기려 하기에 내가 부랴부랴 질부를 찾아온기다.”.. 2021. 6. 10. 임금이 밝으면 신하는 곧다 조선 숙종 때 당하관 벼슬에 있던 이관명이 암행어사가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돌아왔습니다. 숙종이 여러 고을의 민폐가 없는지 묻자 곧은 성품을 지닌 이관명은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황공하오나 한 가지만 아뢰옵나이다. 통영에 소속된 섬 하나가 있는데, 무슨 일인지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섬 관리의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숙종은 화를 벌컥 내면서 책상을 내리쳤습니다.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 갑자기 궐내의 분위기가 싸늘해 졌습니다. 그러나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다시 아뢰었습니다. "신은 어사로서 어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가 1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 2021. 6. 3. 조선 보부상의 아버지 백달원 사내는 지루함과 고달픔을 잊기 위해 소매에서 표지가 너덜너덜한 책자를 꺼내 들었다. 아내가 친정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책자로 사마천의 '사기열전'이었다. 아내는 까막눈인 그에게 글을 가르쳐 읽을 수 있게 했는데, 그는 특히 '화식열전'을 좋아했다. 사내의 이름은 백달원. 황해도 토산 출신의 천민으로 원래 귀족인 왕씨가의 노비였다. 아내는 바로 그 주인집 딸이었다. 노비와 주인 아가씨 신분이었지만, 백달원은 어릴 때부터 아가씨와 오누이처럼 자랐다. 하루는 백달원이 아가씨를 모시고 절에 다녀오게 되었다. 불공을 드리고 내려오는데 소나기가 쏟아져 업고 계곡을 건너다 춘정이 동해서 아가씨를 껴안았는데 아가씨가 거절하지 않았다. 백달원은 아가씨를 몰래 만나서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 2021. 6. 3. 이전 1 2 3 4 5 6 7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