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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년전 한국 2021. 2. 17.
큰가시고기의 사랑 2021. 2. 17.
양자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진 적막강산. 오줌을 누러 다리 밑 움막을 나온 거지 아이의 눈에 개울 얼음장 위 떨어진 보따리 하나가 희미하게 들어왔다. 다리 위를 지나가던 소달구지에서 쌀가마라도 떨어진 걸까, 다가갔더니 이게 무엇이냐! 술 냄새가 진동하는 걸 보니 취객이 다리에서 떨어진 것이다. 북풍한설은 몰아치는데 금방 떨어진 게 아닌 듯 옹크리고 모로 누워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굴을 만져보니 돌처럼 차가웠다. 움막으로 달려가 할배를 깨웠다. 할배가 그 취객을 움막으로 끌고 들어가 모닥불을 피우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희끄무레 동녘이 밝아올 때야 취객이 눈을 떴다. “우리 막동이 아니었으면 당신은 얼어 죽었소. 어찌 젊은 사람이 술을 그렇게….” 할배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고∼고∼고맙습니다.” 젊.. 2021. 2. 12.
The prayer(기도) 2021. 2. 9.
파락호 허진사 파락호 허진사 동네 훈장 세상뜨자 그 부인을 탐하는데… 허 진사는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은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다 팔아먹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색주(色酒) 집으로 노름판으로 떠돌아다니는 한심한 파락호다. 부인은 진작에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려 허 진사 혼자 사니, 끼니 건너뛰기를 밥먹듯이 해 비쩍 마른 손가락이 더 길어졌다. 그런 허 진사가 요 며칠 사이 바빠졌다. 동네 서당 훈장님이 이승을 하직해 상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전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죽고 나자 빈소를 차리기도 전에 달려와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아이고 형님, 이게 어인 일이오~ 아이고 아이고~.” 일가친척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훈장 부인은 허 진사에게 매달렸다. “생전에 형님께서 큰일이 .. 2021. 2. 7.
쌀도둑 김초시는 과거만 보면 떨어져 한양 구경이나 하고 내려오지만 도대체 기가 죽는 법이 없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마누라더러 “닭 한마리 잡아서 백숙해 올리지 않고 뭘하냐”며 큰 소리를 친다. 머슴도 없이 김초시 마누라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모심고 피 뽑고 나락 베고 혼자서 농사를 다 짓는다. 논에서 일을 하다가도 점심 때가 되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김초시 점심상을 차려주고 다시 논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김초시는 식사 때를 조금이라도 넘기면 “여편네가 지아비를 굶겨죽이기로 작정했지” 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말끝마다 “무식한 예편네”라고 무시한다. 어느 봄날, 온종일 밭에 나가 일하고 들어와 안방에서 바느질을 하는데 사랑방에서 글을 읽던 김초시가 들어와 호롱불을 후~ 꺼버리고 마누라를 쓰러트렸다. 그때 .. 2021.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