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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거사의 귓속말 용바위마을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한양의 판서 대감이 자기 아버지 묏자리를 하필이면 용바위 코앞에 잡았기 때문이다. 권세 등등한 판서는 진작에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러 팔도강산 방방곡곡 명당을 찾아 뒤지다 이곳 용바위를 찍게 된 것이다. 용바위마을은 제법 큰 집성촌으로 1년 내내 언쟁 한번 일어나는 일 없이 안온하게 살아가는 마을이다. 병풍 두른 듯한 용마루산에 집채만 한 용바위는 산을 떠받치고 마을 앞으로는 굽이굽이 내가 흘러 이 마을엔 가뭄이 없다. 삼월 삼짇날이면 소를 잡고 갖가지 제물을 장만하여 마을 어른들이 유건을 쓰고 용바위 앞에 제상을 차리고 거창하게 산신제를 올린다. 마을을 보호해 주는 용바위에 해코지를 하면 안된다고 그 근처에서는 나물도 못 캐게 하는데 그 앞에다 묘를 쓰겠다고 하니 .. 2021. 5. 28.
외눈박이를 죽여라 어릴 때 친구들과 죽창놀이를 하다가 한쪽 눈을 잃어버린 외눈박이는 어른이 되어 수완 좋게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었다. 외눈박이가 약재를 사러 영월로 가는 길에 짧은 가을 해가 떨어지자 산골짝엔 금방 어둠이 내렸다. 외눈박이는 산적이라도 만날세라 전대끈을 바짝 조였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멀리 주막집 불빛이 보여 정신없이 내달려 사립짝을 흔들었다. 주모가 엉덩짝을 흔들며 마당을 가로질러 나와 사립을 열었다. “어이구, 추워. 하룻밤 자고 가리다. 저녁을 못 먹었으니 닭 한마리 잡아 주시오.” “그런데 손님, 손님방에 지금 군불을 지피면 시간이 한참 걸리고 저녁상 차리는 것도 늦어집니다요. 괜찮으시면 안방 위칸을 쓰시면 어떻겠습니까?” “괜찮소. 아무 방이나 뜨뜻하면 됐고, 저녁상이나 빨리 차려 주시오.” .. 2021. 5. 28.
큰 것이 탈 이대감은 양반 가문에 천석꾼 부자이자 학식도 깊어 나라의 요직이라는 요직은 빠짐없이 두루 거쳤다. 이목구비 뚜렷한 백옥 같은 얼굴에 허우대도 훤칠해 모두가 그를 우러러봤다. 연회라도 열릴 때면 기생들이 서로 이대감을 차지하려고 안달을 했다. 삼남일녀 자식들도 모두 달덩이 같은 얼굴에 서당에서는 글을 잘해 훈장의 총애를 받으며 쑥쑥 자랐다. 이대감의 부인 또한 절세미인에 양반집 규수로 자라 정숙하고 조신한데다 사군자를 잘 쳐 장안에 이대감 부인의 그림 한장 받으려는 사람들이 목을 빼고 기다렸다. 이대감 부부는 금슬도 좋아, 뭇 대감들이 하나같이 어린 기생 머리를 얹어 주고 딴살림을 차렸는데도 이대감은 오로지 부인뿐이다. 마흔이 넘은 요즘도 별방을 쓰지 않고 매일 밤 안방에서 한 베개를 베고 자며 삼일 도리.. 2021. 5. 28.
두고 온 조끼 황첨지네 집에서 5년이나 머슴 살다 새경으로 밭이 딸린 산 하나를 얻어 나온 노총각 억쇠는 산비탈에 초가삼간 집을 짓고 밤이고 낮이고 화전을 일구어 이제 살림이 토실하게 되었다. 눈발이 휘날리는 어느 겨울날 오후 군불을 잔뜩 지펴 뜨뜻한 방에 혼자 드러누워 있으니 색시 얻을 생각만 떠올랐다. 그때 “억쇠 있는가?” 귀에 익은 소리에 문을 여니 황첨지 안방마님이 보따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마당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억쇠는 맨발로 펄쩍 뛰어내려 머리에 인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그저께 김장하며 자네 몫도 조금 담갔네.” 억쇠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선 채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자네 살림은 어떻게 하나 어디 한번 보세.” 마님은 부엌에 들어가 억쇠가 만류해도 들은 체 만 체 흩어진 그릇을 씻.. 2021. 5. 27.
정말 / 이정록 정말 이 정 록 "참 빨랐지! 그 양반!"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 2021. 5. 27.
횡회전서브 리시브 2021.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