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본격적인 농사철이 다가오면 이집 저집 다락에 남겨 둔 싸라기랑 옥수수를 꺼내 밀주를 담금니다. 며칠이 지나 술이 익을 무렵이면 모내기는 시작되고, 술독이 반쯤 익어갈 무렵이 되면, 마을에서는 어김없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납니다.
집집마다 술을 담가 먹으니 양조장 술이 팔리지 않아 세금이 줄어들자 세무서 직원이 밀주단속을 나온 것입니다. 검은 양복차림에 누런 봉투를 엎구리에 낀 세무서 직원이 마을에 나타나면, 마을회관에 있는 종이 울립니다.
세무서 직원을 먼저 본 사람이 미리 약속해 놓은 신호대로 종을 쳐 술 조사가 나왔음을 마을 사람 들에게 알리는 것이지요. 종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이집 저집 다니며 대문을 걸어 잠그고는 아이들조차 모두 데리고 마을 회관으로 모입니다. 술을 꼭꼭 숨겨 놓기는 했지만, 세무서 단속원의 개코같은 후각과 술독을 찾는날카로운 꼬챙이에 술독이 들킬까봐 피신을 한 것입니다.
술 조사가 반복될 수록 어머니는 술독을 점점 어렵게 감추십니다. 소여물 깍지우리 속에, 나무간 깊숙이에, 잿간 밑에, 울타리 밑에..., 마침내 꼬챙이를 들고 집 주변 여기저기를 쿡쿡 찔러 보던 세무서 직원은 마을사람들의 일사불란한 대응(?)에 허탕을 치고는 결국 돌아가고 맙니다.
살기가 나아진 요즈음, 술을 빚어 먹기보다는 사먹는 것이 익숙해져서인지 이젠 시골에 가 봐도 밀주를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내기와 추수를 할 즈음에 술 조사로 벌어졌던 숨바꼭질의 애환도 이제 추억 속의 일이 되었습니다. 새삼 옛날의 술 조사 나왔던 모습이 그립기만 합니다.
김용길/그린매거진(농촌진흥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