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궁기 도시락
학교에 가기위해 아침일찍 책보를 옆구리에 동여매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이 집 저 집
들려 함께 갈 애들을 모으고 학교 가는 길에 장난칠 것 다 치면서 가면 해는 이미 중천에 걸렸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난 도시락을 들고 슬그머니 교실을 나와 애들이 보이지 않는 학교 뒷산으로 가서 살랑거리는 봄바람과 따스한 햇
빛아래 도시락을 펼쳐 놓는다. 숨기고 싶은 도시락이지만 배고플까봐 싸주신 밥을 안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
들 앞에서 펼쳐놓고 먹기도 창피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쌀 한 톨 들어가지 않은 꽁보리밥에 반찬은 짠지를 썰어 빨갛게 무친 것과 콩자반이었다. 반찬은 그런대로
봐줄만한데 꽁보리밥은 정말 애들 앞에 내놓을 수 없이 왜 그리 창피했는지... 젓가락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
던 보리밥... 이런 도시락을 싸준 엄마를 원망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시는 누구나 어려웠던 춘궁기를 어린 마음에도
이해했던 것 같다.
지금, 그 꽁보리밥 도시락이 추억거리가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지금은 건강에 좋다고 일부러 보리밥을 찾아다니
며 먹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어쩌다 단골식당에 가면 짠지를 썰어 무친 것이 있어 먹어보지만 그때 그 맛은 느
낄 수가 없다. 난 다만 그때를 추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