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003 부부 간통 공갈단 어수룩한 장사꾼이 당나귀 세마리를 몰고 몇날 며칠을 걸어 법성포에 다다라 저잣거리 주막에 짐을 풀었다. 이튿날 날이 새면 굴비와 멸치를 사서 바리 바리 나귀 등에 싣고 영월로 돌아갈 참이다. 쇠고기국밥에 막걸리 한호리병을 비우고 나니 초저녁부터 눈꺼풀에 납덩어리를 매달았는지 졸음이 쏟아졌다. 방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전대는 단봇짐 에 넣어 베개처럼 베고 잠이 들었는데, 너무 더워 잠이 깨고 보니 엄동설한도 아닌데 군불을 얼마나 지폈는지 방바닥이 설설 끓었다. 들창도 없는 방이라 장사꾼은 하는 수 없이 방문을 열고 윗도리를 훌렁 벗은 채 또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밤이 깊었나. 이상한 낌새에 잠을 깨니, 아니 이럴 수가. 웬 여인이 장사꾼의 팔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손으로 더듬어 보니.. 2021. 7. 24. 황토 개울물 아버님의 묘소를 다녀온 이판윤 그날 밤 어머니와 함께 또 다른 산소를 찾아가 절을 올리는데 서른셋 젊은 나이에 판윤 (조선시대 한성부의 으뜸 벼슬)으로 봉직하는 이서붕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다. 사또와 육방관속이 마중 나와 떠들썩해질까 봐 어둠살이 내릴 때 평상복 차림으로 말고삐를 잡은 하인 한 사람만 데리고 고향집에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홀로 지내시는 모친에게 큰절을 올렸다. “바쁜 공무를 접어두고 어떻게 하경했는고?” “어머님 문안도 드리고 아버님 묘소도 찾으려고 윤허를 받아 내려왔습니다.” 병풍을 등 뒤로 보료에 꼿꼿이 앉아 계시지만 어머니 얼굴의 주름은 더 늘었고, 머리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찬모를 제쳐두고 손수 부엌에 나가 아들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호박잎을 찌고 강된장을 .. 2021. 7. 24. 변태 과부 인기척에 잠이 깬 황과부가 “누, 누, 누구요?” 이를 다닥다닥 부딪치며 벌벌 떨자 “나는 도적이다. 꼼짝 말고 이불 덮어쓰고 있으렷다.” 일부러 목소리를 걸걸하게 깔지만 어딘가 귀에 익은 음성 이다. 도둑은 깜깜한 방에서 장롱을 뒤지 다가 황과부를 밑에 깐 채 다락을 열고 더듬기 시작했다. 황과부는 그 상황에서 도 정신을 차려 머리맡의 바느질 고리짝 에서 가위를 집어 들고 도둑의 옷섶 끝 자락을 몰래 삭둑 잘라냈다. 도둑은 여기저기 뒤져도 별것이 없자 황과부를 흔들었다. “네년이 꽂고 다니던 금비녀는 어디 있는겨?” “여, 여, 여기.” 황과부가 비녀를 건네주자 조끼 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갈 제 꼬끼요 새벽닭이 울었다. 처마 밑에서 짚신을 신으려던 도둑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이거 큰일 났네.” 그.. 2021. 7. 24. 콩 한홉 천석꾼 부자 황참봉은 틈만 나면 지난 여름 홍수 때 개울에 빠져 익사한 셋째 아들 묘지에서 시름에 젖는다. 셋째는 자식들 중에서 가장 품성 좋고 똑똑해 초시에 합격하고 과거 준비를 하던 아끼 던 아들이었다. 맏아들은 장사한다고 논밭을 팔아 평양으로 가더니 기생과 살림을 차리고 하인을 보내 돈만 가져갔다. 그 많던 돈 을 기생 치마 속으로 다 처박아 넣고 계속 장사 밑천이 모자란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둘째놈은 과거 보겠다고 책을 끼고 있지만 낮에는 책을 베개 삼아 잠만 자고 밤이 되면 저잣거리 껄렁패들과 어울려 기방 출입으로 새벽닭이 울어 서야 몰래 들어왔다. 세간 날 때 떼어 준 옥답을 야금야금 팔아 치우는 것이다. 첫째며느리는 남편이 평양 가서 하는 짓을 뻔히 알고 있는 터라 자신은 사치 스럽게.. 2021. 7. 24. 까마귀 고기 곽서방 새색시는 눈코 뜰 새 없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대식구 아침식사 준비하랴 설거지할 틈도 없이 새참 만들어 함지박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논매기를 하는 들판으로 달려갔다가 부리나케 집에 와 점심 준비하랴 바쁘다. 막걸리 걸러서 오후 새참 들고 가고 저녁 준비하고 별 보고 빨래하고 나면 삼베적삼이 땀에 절어 등짝에 척척 달라붙어도 멱 감을 힘이 없어 안방에 들어가 쓰러진다. 문제는 녹초가 되어 눕자마자 잠 속으로 빠져드는 새색시의 하루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여름이라 식구들은 멍석을 깔고 마당에서도 자고 마루에서도 자고 안방에서도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자는데 새색시가 답답해서 눈을 비벼 보면 신랑 곽서방이 그 육중한 몸을 덮쳐 쿵덕쿵덕 절구를 찧고 있었다. 치마를 올리고 고쟁이를 벗기는 것도 새.. 2021. 7. 24. 백과부 옥정리에 과부 하나가 흘러 들어왔다. 동구 밖 산 아래 외딴집에 똬리를 튼 백과부는 당장 이백여가구나 되는 동네 남정네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지아비가 복상사를 했다네.” “누가 그러던가?” “이 동네 저 동네 발길 닿는 방물장수가 그러대.” 느티나무 아래 장기판은 시들해지고, 열기는 온통 백과부에 관한 밑도 끝도 없는 뜬소문에 쏠렸다. 가끔씩 집 밖으로 나와 모습을 보이는 30대 초반 백과부의 도톰한 입술과 흘겨보는 눈매엔 색기가 흘렀다. 매듭끈으로 졸라맨 허리는 잘록하고 두쪽 방둥이는 탱탱하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살짝 얽은 곰보 부엌데기 처녀를 데리고 술을 팔기 시작했다. 주막이 생긴 것이다. 동네 남정네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호시탐탐 백과부 치마 벗길 기회를 노렸다. 친구들과 닭볶음탕 안주에 탁.. 2021. 7. 24.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3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