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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음

이것만 쓰네

by 진밭골 2010. 8. 26.

 

 

          이것만 쓰네

                                                                                   이기철

 

내 언어로는 다 쓸 수 없어 이것만 쓰네

山房에 벗어놓은 흰 고무신 안에 혼자

놀다간 낮달을

 내게로 날아오다 제 앉을 자리가 아닌 줄

미리 알고 되 돌아간 노랑나비를

 단풍잎 다 진 뒤에 혼자 남아 글썽이는

가을 하늘을

한 해 여름을 제 앞치마에 싸서 일찌감치

풀숲 속으로 이사를 간 엉겅퀴 꽃씨를

내 언어로는 다 쓸 수 없어 이것만 쓰네

사월 달래순이 묵은 돌덩이를 들어 올리

힘을 본 것도 같은데

저를 좀 옮겨달라고 내 바지 자락에 매달리는

어언 한 해를 다 살아버린 풀씨의 말을

알아들은 것도 같은데

아직도 흙 이불로 돌아가지 못한 고욤

열매의 추위를 느낀 것도 같은데

다 쓸 수 없어 이것만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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