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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음

나평강 약전(略傳)

by 진밭골 2018. 12. 28.

             나평강 약전(略傳)

                                                            나희덕


그는 얼마간의 가축을 키웠다


병아리들을 부화시켜 마당에 놓아먹였고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얼룩염소 한마리를 사다가 젖을 짜 먹였다


염소가 언덕에서 풀을 뜯을 때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인가를 하염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염소가 풀을 다 뜯은 후에도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언덕의 풀처럼 나지막하고 바람에 잘 쓸리는 사람이었다


닭 키우는 걸 좋아했지만

죽은 닭은 잘 만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갓 난 달걀과

마악 짜낸 염소젖,

생전에 그가 식구들에게 건네준 전부였다


그보다 따뜻한 것을 알지 못한다


※ 약전(略傳) : 한 사람의 생애를 간략하게 적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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