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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음

한모금씨 이야기

by 진밭골 2018. 4. 22.

             한모금씨 이야기

                                                                    배수연


잠든 새들의 머리마다 파마를 하고 달아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새들의 작은 머리에 파마를 하거나 색을 물들이고 갔다

잠에서 깨면 새들은 다른 새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모금씨의 어린 시절 장난이었다

그는 뭐든지 한 모금만 필요한 사람이었다


한 모금만 파는 콜라는 없냐고

한 모금만 파는 커피는 없냐고

새들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물었다


사람들은 콜라 한 캔이나

한 잔을 줄 수는 있었지만

한 모금을 주는 방법은 몰랐다


그에게 세상은 너무 과분한 것이었다

그의 심장은 새처럼 작았지만

몸집은 새의 80배나 되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앉지 못했다

같은 곳을 수천 번 날아다니며 날개 접을 곳을 찾았다

용기를 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귀청에서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한모금씨는 잠시 앉았다 다시 자리를 뜰 때마다

앞머리를 흔들어 색을 바꾸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뾰족한 발톱을 모으고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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