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어덯게 해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열심히 기도해도 그분의 존재를 가슴 깊이 느끼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분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름되로 꽤 오랜 동안 신앙생활을 한 분들 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아직 하느님 보다내가 더 높은 곳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올라가려고만 하는 내가 지극히 낮은 곳에 계신 그분을 어덯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내려갈 때 비로소 주님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됩니다. 내가 그토록 똑똑한데 성경 말씀이 내 귀에 들려오겠습니까? 내가 누구보다 뛰어나고 높은데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겠습니까?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 될 때 진정으로 우리는 낮아질 수 있고, 그 내리막길에서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높고 귀한 사람도 많고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오묘한 신비는 겸손한 사람에게만 드러납니다.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집회3.20) 왜냐하면 하느님 역시 당신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실 만큼 지극히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르스의 성자'라 불린 요한 비안네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겸손은 모든 덕(德)을 엮어놓은 묵주와 같고,교만은 모든 악(惡)을 엮은 묵주와 같습니다." 나무에 뿌리가 없으면 나무가 지탱할 수 없듯 사람에게 겸손이 없으면 다른 모든 덕도 지탱할 수 없습니다. 반면 교만에 빠지면 하느님과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인간 원죄의 시작이 교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 신앙인은 자신을 굽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낮추는 그만큼 하느님이 높여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 질 것이다." 그리고 드러내지 않는 그만큼 하느님이 갚아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에게 받는 것보다 하느님게 받는 것이 훨씬 더 값지고 은혜로운 일이 아닐까요?
이억수 필립보 신부 / 대구교구청 3대리구 청소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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