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에 군사 당국 및 적십자 회담을 전격 제의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문제 해법이 ‘대화’와 ‘압박’ 중 대화에 더 무게가 실려 있음을 재확인해줬다. 대화 그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먹혀든다면 제재보다는 대화가 여러모로 효과적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해법이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바람직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느냐다. 대답은 ‘아니오’ 쪽이다. 대화를 위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북한은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화답’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한미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과도 맞지 않는다. 한미 양국은 공동성명서에서 “올바른 여건하에서 북한과 대화의 문이 열려 있음을 강조하였다”고 발표했다. 과연 지금 ‘올바른 여건’이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나?
정부 스스로도 그렇지 않음을 인정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연설에서 제시한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비핵화 의지 보인다면’이란 전제가 어느 정도 충족이 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런 점에서 “그럼에도 이런 제의를 한 것은 현재 한반도 평화와 긴장 완화, 이산가족 상봉 등 시급한 문제 해결을 위한 초기적 단계의 조치”라는 조 장관의 설명은 궁색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북한이 회담 제의를 수용할지도 의문이거니와 설사 성사됐다 해도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안갯속이다. 북한이 군사 회담 제의에 응하더라도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수역에서의 우리 군 작전 활동 중지, 사드 배치 철회 등을 요구해 올 것이다.
오죽하면 문 대통령 스스로 “가장 절박한 것이 한반도 문제인데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이를 해결할 힘이 없고 합의를 이끌어 낼 힘도 없다”고 고백했을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섣불리 대화 카드를 꺼내 들기보다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북을 압도할 힘이 있을 때 북은 스스로 대화의 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매일신문 사설 / 201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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