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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원전 건설 중단도 '절차적 정당성' 갖춰라

by 진밭골 2017. 7. 15.

  한국수력원자력이 14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13일 열려던 이사회가 한수원 노조와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에 막혀 무산되자 이렇게 한 것이다. 한수원은 이렇게 하면서 긴급 이사회 개최를 사전 예고하지 않았다. ‘날치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공사 중단 결정까지의 과정을 보면 문제점투성이다. 우선 한수원 이사회가 공사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부터 의문이다. 원자력안전법 제17조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만이 원전 건설 일시 정지와 취소 결정 권한을 갖는다. 그렇다면 긴급 이사회의 결정은 법적 효력이 없는 월권행위라는 반론을 피하기 어렵다.

 

  또 긴급 이사회 개최가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한수원 이사회 규정은 긴급 이사회는 긴급한 의안이 있을 때 소집하게 돼 있다. 문제는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일시 중단이 ‘긴급한 의안’이냐는 점이다. 심각한 설계 결함이 발견됐거나, 공사를 중단해야 할 만큼 심각한 사고가 터졌거나, 허가 절차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모를까, 현재로선 공사를 중단해야 할 만큼 ‘긴급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이런 무리수를 둔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속전속결로 공사 중단을 결정한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얘기다. 지난달 27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단 20분 만에 결정했다. 주무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았다. 해양수산부장관의 공사 중단 의견 제시에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결론을 내버렸다. 그리고 이 결정은 말단기관까지 단 사흘 만에 공문으로 하달됐다. 모두 절차적 정당성과는 거리가 먼 속도전이다.

이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태도와는 180도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해 안에 완료될 사드 배치를 1년 이상 미뤄 놓았다. 이 때문에 한때나마 미국으로부터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의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사드는 그렇게 절차적 정당성을 따져야 하고, 사드 못지않게 국민 생활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원전에 대해서는 이렇게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해도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원전 정책도 절차적 정당성에서 예외일 수 없다.

                                                                                                    매일신문 사설/2017.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