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전 장관의 '소원시'처럼 천 길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벼량 끝에서 2014년
갑오년 청마의 해를 맞았다. 지난해는 너나없이 허송세월한 일 년. 맘 편한 적이
별로 없었다.
정권 교체에 실패한 야권과 대선 패장은 그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채
사사건건 발목 잡기에 다름아닌 거부(veto) 민주주의(democracy) 즉 비토크라시
의 늪에 빠졌다. 설령 국정원 댓글이 있었더라도 당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는 국민들의 응답에도 불구하고, 뒤집기를 꿈꾸는 야권의 열망은 길거리 정치로,
단식투쟁으로, 도심 시위로 이어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당의 지지도는 새누리당의 3분의 1 토막으로 잘려나갔다.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춰 나가기는 커녕, 무리수만 두는 제1야당을 향해 절반 이상
의 국민은 "많이 했다 아이가, 이제 그만해라" 고 싫증 내고 있다. 정치 9단, 운동
깨나 해본 이들이 모인 민주당이 여론의 향배에 왜 이렇게 둔감한지 이해되지 않
는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잘한 것도 하나 없다. 최근 철도노조 불법 파업 개입 건
만 해도 그렇다. 포스트 박근혜로 주목받으며 차기 대권 잠룡 반열에 오르내리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민주당 박기춘 의원등과 함께 불법 파업으로 경찰이 공식
수배 중인 김명환 철도노조위원장을 국회 정론관에서 만나 국회 내 철도소위 구성
을 전제로 파업 철회를 끌어냈다.
조만간 항복할 텐데 퇴로를 열어준 데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가 김무성 의원 공식
사이트에 끝도 없이 올라오고 있다. 여권 중진이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4반세기
가 지나도록 불합리하게 맹위를 떨치고 있는 비정상적인 노사 관계를 바로잡을 절호
의 기회를 걷어버린 것이다.
대체재가 없는 공공재인 철도가 묶이는 바람에 불편과 손해를 감수한 국민과 기업
들은 이번만은 좋은게 좋다는 식의 임시봉합을 원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파업 불참 직원들은 왕따 위기에 처했고,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초강성
철도노조를 휘어잡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김무성의원을 능가하는 에러를 범한 정치인
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이다. 황 대표는 민주주의 작동의 기본 원리인 다수결이 아니
라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법안 긴급 통과를 가능하게 한 국회선진화법을 발의하여 과
반 의석을 차지하고도 소수 야당에 끌려다니는 에러를 범하더니 최근 또 다시 대형 사
고를 쳤다. 차기 대권은 넘어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시민단체와의 대담에서 내뱉
고 만 것이다.
정치는 가치관의 싸움이고, 이념 싸움이다. 집권 여당은 사회의 근본이 흔들리지 않
도록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 155명 국회의원들이 이런 투쟁성을 지니
는지 회의적이다.
인터넷 공간에 온갖 괴담이 설치면서 본말이 전도되어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수서
발 KTX, 의료 민영화, 수도료 괴담 등 가짜 정보들이 설쳐도 나서서 적극적으로 차단할
생각이 없다.
관계 부처를 혼내서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내게하고 , 그를 배포해야 괴담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데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 아들을 둔 것이
문제의 본질인지 , 처신에 문제가 있는 검찰총장의 뒤를 알아보는 게 더 야단 맞을 일인
지 국민 앞에 설명조차 않는다.
프레임을 바꿀 의지도 약하고, 끈질기게 공격하는 네티즌들의 욕을 먹기도 싫다는 조다.
그래서 지난해는 정치의 실종으로 기록되었다. 집권 2년차에 들어서야 첫 기자회견을 하
는 대통령은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 필요하다면 통일 시대 준비를 위해 북한 지도자와
도, 국민을 대변하는 기자들과도 자주 만나야한다.
최소 오바마 대통령 처럼 한 달에 2번 이상은 기자회견도 갖고, 압축 성장하느라 곳곳에
뒤틀어진 한국 사회를 '압축 변화' 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압축변화를 가져오는 데 언론
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는가. 교모하게 법의 울타리나 관(官)계로 숨어든 종북주의들을
속아내는 데도 정치권은 앞장서야 한다.
2014년 갑오년. 정치권은 응답해야 한다. 이제 우리 정치는 기둥이 조금만 더 기울어도
천길만길 나락으로 떨어진다.
최미화 / 매일신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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