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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음

허전한 인사

by 진밭골 2009. 6. 18.

 

 

 

            허전한 인사

                              박상순

 

  아내가 옷장을 정리하다 십 년 넘은 양복을 이
제 버리자고 한다. 두어 벌의 새 양복이 옷장에
걸리는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양복을 버리자
고 한다. 털이 다 빠지고 소매 낡아 몸에도 맞지
않는다. 어깨가 좁고 소매가 달랑 올라붙었다.
 뿌리양복점이 문 닫은 지 이십 년이 지났는데,
옷장에는 아직 뿌리양복점이 걸려 있다. 안주머
니에 뜨겁던 젊은 날이 아직 남아 있으려나.
비닐봉지에 싸여 구석으로 밀려난 양복을 꺼낸
다. 휑하니 불어오는 바람의 문을 닫는다. 젊은
날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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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하였으리라. 첫 양복의 기억. 첫 키스
처럼 영 잊히지 않는 기억. 첫 양복은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였
다. 양복을 챙겨줄 부모가 없어 숙모의 손에 이끌려 양복점 문턱을 넘
었던 사람이 있었다. 난생처음 목돈 주고 맞춘 양복이 아까워 옷장에
걸어놓고 바라보기만 하다가 간 사람도 있었다. 다름 아닌 우리집 이
야기이다.
 그런데, 맞춤양복이라니. 그것도 이십 년이 넘은 양복을 버리지 못해
망설이다니. 돈이 아까워서 그런 것은 아닐 터. 그 옷에 깃든 '젊은 날'
을 쉽사리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은 가고, 뿌리양복점도 문
을 닫고, 시인도 정년을 맞이했다. 지방도를 따라 깊이 들어간 벽촌. "대
한민국 중학교 2학년/아홉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오지 중의 오
지를 골라 다녔던 교직. 낡은 양복 밀치듯 나이를 벗는다. "수고 많았다".
젊은 날이여.

                                                                    장옥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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