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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음

못 다한 말-골방에서

by 진밭골 2018. 7. 20.

      못 다한 말-골방에서

                                   김욱진(1958~ )


자장면 한 그릇 천 원 할 때

세 그릇 값으로 시집 한 권 샀던 그 시절

나는 쫄쫄 굶긴 배 띄워놓고 배부른 척하다

신세타령만 하는 비렁뱅이

시인이 되고 말았다

책장에 꽂힌 해묵은 시 몇 편 거들먹거리며

유명시인 헐값에 다 팔아먹고

이젠 골방으로 밀려난 시의 집들마저

경매로 넘겨야 할 판이니

내게로 와 굶어죽은 시혼들이여

지렁이처럼 구불텅구불텅 기어가다

걸려 넘어지고 잘리고 짓밟힌 숱한 문장들이여

그대 못 다한 말, 못 다한 저녁의 풍금소리

언제쯤 울려 퍼질 것인가

골방에 골백번 더 쳐넣었다 건져낸 말

아, 누가 숨은 상상과 행간의 말들을 읽고 갈까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채 안 되는 아의 집 나의 시집

골방에서 말을 잃은 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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