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
이정옥
한벌의 옷을 사고도 인생을 산 것 같다.
내가 지금 토끼 가죽을 입은 것인지
다른 사람을 구입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 짠 관에 누운 것인지
그것을 입고 외출을 했다.
버스를 타고 꾸벅꾸벅 졸다가
간을 꺼내 바위에 널어 말리고 다시
해변으로
옷은 흔한 비유지만 그것이 겉과 속은 아니다.
현실과 꿈이 아니다. 현상과 본질도 아니다,
제발 진심과 가면이
온몸이 다 삭아지고 녹아지고 지워질 때까지
그것이 되어가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다.
용왕을 만나는 것이다.
아, 넌 유행을 몰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현실과 현상과 가면을
지나갔다. 혜화역이라든가
산호초 곁을
심해의 승강장에 서 있는데
너무 오래 살아온 자라 한 마리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는 임무가 있다고 했다.
의상에 손을 대고
깊고 깊은 두근거림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