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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음

내가 떠난 뒤

by 진밭골 2017. 11. 12.

                      내가 떠난 뒤

                                                               박영근


흰 낯달이 끝까지 따라오더니 여주 강물쯤에서 밝은 저녁달이 된다


늙은 비구 하나이 경을 읽다가

돌에 새긴 비문 속으로 돌아간 뒤에도

내가 바라보는 강물은 멈추지 않는다


내안에서 오래 그치지  않는 그대 울음소리

강물이 열지 못한,

제 속에 잠겨 있는 바위 몇개


나 또한 오늘 밤 읍내에 들어가 싸구려 여관 잠을 잘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떠난 뒤

맑은 어둠살 속에서 사라지는 경계들을

강물이 절집을 품고 나직하게 흐르기도 하는 것을


내 끝내 얻지 못한 강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대 모습을


이 강에서 하루쯤 더 걸으면

폐사지의 부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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