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분노에 편성한 정치판 가관, 국격·국가 미래는 이미 안중에 없어
오직 권력 잡기 위한 선동만 넘쳐나, 국정농단 특검 '삼성특검'으로 변해
세상이 미쳐 있다. 대중은 대통령을 끌어내려 화형(火刑)에 처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언론은 그 불이 빨리 지펴지기만을 기다린다. 정치판은 대혼란이 벌어졌다. 제 살길을 찾아 뛰어다니는 잡상인같은 족속부터 눈앞에 어른거리는 권력에 벌써 취해버린 과두(寡頭)들 까지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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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분노가, 실망과 낙담이, 그리고 이것들을 해소하기 위해 출구를 찾아 헤매는 거대한 광기(狂氣)가 분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단적 복수심 같은 것이 꿈틀댄다. 부정한 방법으로 그리고 교묘한 편법으로 축재하고 호의호식하며 권력을 부리던 자들의 배후에 이런 더러운 '관계'가 놓여 있었던 데 대한 분노다. 거기에 정치를 비롯한 기존 질서에 대한 분노와 가진 자 배운 자들이 중심이 된 기득권자들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더해졌다. 이 광장의 분노에 편승한 언론은 관련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인격말살을 서슴치 않는다. 어떤 변명도 가납(嘉納)지 않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정치판이다. 국격(國格)이나 국가의 미래니 하는 건 이미 안중에 없다. 오직 권력을 잡기 위해 벌이는 선동만이 넘쳐난다. 그러니 '대통령을 끌어내려 당장 구치소로 보내야 한다'는 말은 점잖은 편에 속한다.'땅에 파묻자'는 말을 들을 땐, 그 말이 아무리 문학적 비유라 치더라도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은 더 자극적인 말을 찾는다. 어떤 말을 해도 대중의 광기를 충족시키면 박수를 받는 것이다. 말하자면 형장에 오른 도부수(刀斧手)가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에게 잘린 죄수의 머리를 들어 보여 환호를 받는 형국이다.
청문회는 한술 더 떳다. 재벌 총수를 죄다 불러놓고 '촛불시위에 가본 사람은 손 들어 보라'는 해괴한 질문을 던졌다. 의원들은 누가 더 망신주기에 능한지 경쟁을 벌였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의원들을 '청문회 스타'라며 띄우기에 바쁜 언론의 태도다. 특검도 덩달아 춤을 춘다. 정유라에게 주지 말아야할 학점을 줬다 해서 교수를 긴급체포하고 구속했다. 아마 지금쯤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오금이 저릴 것이다. 최순실 일당 국정농단 특검은 어느새 '삼성 특검'이 됐다. 재벌개혁이 특검의 목적이 된 것이다. 청문회든 특검이든 이런 건 대중의 광기 때문이다. 그 광기에서 벗어날 재간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끝이 어떨 것 같은가?
전원책(변호사) / 매일신문 '이른 아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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