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 이야기

극락

by 진밭골 2022. 1. 16.
집안 살림에 동네일까지 잘해 마을의 보물덩어리인
몽촌댁 바위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는데…
몽촌댁은 동네의 보물덩어리다.
시부모 살아생전에는 얼마나 잘 모셨는지 단옷날 고을 원님으로부터 효부상으로 비단 세필을 받기도 했다.
또 동네일이라면 집안 살림을 접어두고라도 앞장섰다.
핏줄도 아닌데 혼자 사는 할머니가 딱하다며 죽을 쒀 나르고 가마솥에 물을 한솥 데워 목욕시키는 것은 다반사다.
동네로 들어오는 외나무다리가 흔들린다고 남편과 둘이서 온종일 말뚝을 박는가 하면 남의 집 길흉사엔 새벽부터 밤늦도록 제집
 
큰일처럼 척척 일을 처리했다.
그뿐 아니라 일 잘하면 박색이라는데 몽촌댁은 채홍사가 봤다면 궁궐로 이끌려 갈 만큼 천하일색이었다.
남편 박 서방도 마음씨가 무던한데다 육척 장신에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우대가 멀쩡했다.
또 힘이 장사라 씨름판에서 황소 몇마리를 집으로 몰고 오기도 했다.
둘은 금실도 좋아 박 서방은 장날마다 몽촌댁을 데리고 장에 갔다.
가는 길에 보는 눈이 없으면 솔티고개에서 몽촌댁을 업고 가기도 했다.
진달래가 온산을 붉게 물들인 어느 봄날 몽촌댁을 업고 솔밭길을 걷던 박 서방이 피가 쏠렸는지 길을 벗어나 진달래꽃 속에서 몽
 
촌댁을 눕히고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꿈속처럼 복을 쓰고 살던 몽촌댁이 큰일을 당했다.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올랐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박 서방이 마누라를 둘러업고 내려와 찬물을 끼얹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몽촌댁은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깨어날 줄 몰랐다.
이로 인해 박 서방네 집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박 서방네 집뿐만 아니라 온동네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대처에 나가서 이 의원을 불러오고 저 의원을 불러와도 도대체 백약이 무효했다.
몽촌댁은 그저 자는 듯이 숨만 새근새근 쉬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박 서방 집에 제 일처럼 모여들었다.
조 참봉네 늙은 마님은 몽촌댁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몽촌댁의 코를 잡고 꿀물을 입에 넣으니 캑캑거리며 조금씩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긴 하나 먹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석달이 지나자 몽촌댁은 꼬챙이로 변했고 박 서방은 한숨만 토하며 주막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네살난 아들녀석이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제 어미와 입맞춤을 하며 씹고 있던 밥을 넣어주자 삼킨 것이다.
흰죽을 입에 넣어줘도 토하기만 하던 몽촌댁이 네살배기 아들이 오물오물 씹어준 밥은 먹는 것이었다.
방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조 참봉네 늙은 마님이 눈물을 닦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몽촌댁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오실댁은 나와 몽촌댁 곁에서 밤을 새우며 수발을 들 것이야.
북촌댁과 웅천댁은 밥 당번 문수댁은 군불을 지피고 민서방댁과 김천댁은 빨래를….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던 늙은 마님이 이하댁을 보더니 밖으로 따로 불러냈다.
4년 전에 네 신랑이 죽었을 때 몽촌댁이 어떻게 했지?
이하댁이 대답했다.
그걸 말로써 어찌 다할 수 있습니까요.
몽촌댁을 위한 일이라면 지옥에 가라고 해도 가겠습니다.
그러자 늙은 마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몽촌댁이 설령 깨어난다 해도 이 집은 풍비박산이 날 거야.
자네도 박 서방이 주막집 주모한테 반해서 논밭뙈기를 팔려고 내놓았다는 소문 들었지?
예.
박 서방을 나무랄 수만도 없는 것이 몽촌댁 다치기 전까지 하룻밤도 거르는 일이 없었대.
이하댁, 자네가 몽촌댁이 깨어나서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박 서방을 맡아줘야겠어.
뭐라고요?
지옥이 아니고 극락이야!
이하댁은 고개를 숙였다.
이 일은 하늘과 자네와 나와 박 서방만 아는 거야.
그리고 꼭 다짐받을 일은 몽촌댁이 박 서방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자네는 박 서방과의 관계를 딱 끊는 거야 알았지?
예 마님.
그로부터 열달 만에 이하댁의 극락도 끝이 났다.
몽촌댁이 깨어난 것이다.
 
/ 조주청의사랑방이야기

맨위로

'사랑방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희(六喜)  (0) 2022.01.16
죽마고우  (0) 2022.01.16
운명의 윷을 던지다  (0) 2021.11.20
다시 찾은 신랑  (0) 2021.11.20
팔전구기  (0) 202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