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늙은이가 외동아들의 병을 고치려고 몇뙈기 안되는 밭을 팔아 강원도 정선 땅으로 산삼을 사러 가다가 원주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하루 종일 70리를 걸어와 어지간히 피곤했던지 저녁 수저를 놓자마자 객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엽전 꾸러미를 품에 안고 모로 누워 금방 코를 골았다.
마당에서는 하룻밤 묵고 갈 객들이 모깃불을 피워 놓고 떠들썩하게 막걸리판을 벌였다.
소장수, 보부상, 노름꾼, 심부름 가는 마당쇠, 땅꾼, 소금장수가 어울려 대작을 하다가 누군가 툇마루에 걸터앉은 이에게 소리쳤다.
“스님, 곡차 한잔 하시지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망설임 없이 성큼 내려와 막걸리 잔을 받아 단숨에 비우더니 주모를 불러 막걸리 반말을 샀다.
아무리 봐도 승려 복장을 한 산적이었다. 술판은 삼경이 가까워서야 끝났고 모두가 비틀거리며 객방에 들어가 널브러졌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주막이 발칵 뒤집혔다.
늙은이가 품고 자던 엽전 꾸러미가 없어진 것이다. 주모가 관가에 신고해 주막집에 잔 사람 일곱명 모두가 동헌으로 잡혀갔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초지종을 얘기하는 노인의 사연을 듣고 난 사또는
“내가 찾아드릴 테니 걱정 마시오!”
라고 큰소리치고는 나졸들을 시켜 각자의 소지품을 뒤졌으나 엽전 꾸러미가 나올 리 없다.
“여봐라, 형방은 저놈들을 형틀에 묶고 매우 쳐라.”
사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험상궂은 중이 목탁을 두드리며 앞으로 나왔다.
“무고한 백성들을 함부로 태질하면 소승은 임금님께 상소할 것이오.”
사또는 흠칫 놀라 그들을 그냥 옥에 가두었다.
저녁상 앞에서 멍하니 한숨만 쉬고 있는 사또에게 부인이 까닭을 물었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는 사또 부인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튿날, 동헌 앞마당에서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오색기가 펄럭이고, 신무당은 작두를 타며 방울을 흔들고, 머리를 산발한 망나니는 시퍼런 장도로 칼춤을 추며 입으로 연달아 물을 뿜었다.
감방에서 나온 일곱사람은 동헌 마당에 꿇어앉았다.
작두 위에 선 신무당이 앙칼진 쇳소리로 말했다.
“듣거라, 내가 치마를 벗어 너희를 덮을 테니 각자 오른손을 치마 밖으로 내놓아라. 내가 주문을 외면 불쌍한 노인의 엽전 꾸러미를 훔쳐간 사람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릴 것이다. 그러면 저 칼이 그 손을 잘라버릴 것이니라.”
신무당이 치마를 다 벗기도 전에 사또 앞으로 나와 엎드리며 두손 모아 살려달라 비는 사람은 스님 의복을 갖춘 산적이었다. 엽전 꾸러미는 주막 뒤꼍 검은 간장독 바닥에서 건져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