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진성'(逼眞性)이라는 말이 있다. 문학 용어인데,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법'해서 독자들에게 실제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는 정도를 말한다.
가령, 주인공이 손발이 꽁꽁 묶인 채 깊은 산속 동굴에 갇혀 있고, 괴한들이 주인공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숲 트레킹에 나섰던 사람이 우연히 이 광경을 발견하고, 괴한들을 무찌르고 주인공을 구출한다고 하자. 핍진성이 결여된 작품이다.
작가가 주인공을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저런 '탈출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실력 없는 작가는 이야기를 무작정 격하게 끌고 가고, 결국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렇다고 주인공을 죽게 두면 이야기가 끝나 버리니 '갑자기 나타난 산신령처럼' 아무 관련 없는 인물을 등장시켜 주인공을 구출하는 억지를 부린다. 이런 게 '삼류소설'이다.
허구 세계인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인 '역사'에도 '삼류 서사(敍事)'는 존재한다. 가령, 범죄 혐의를 받는 인물이 처벌을 면하거나 낮은 처벌을 원한다면 유리한 증거를 찾고, 자신을 열심히 변론하는 것이 '핍진성'에 부합한다. 하지만 역사를 집필 중인 文(문)작가는 뜬금없이 재판이 열리지 않거나, 검찰 수사권이 없어지는 억지 설정으로 '죄인'이 처벌을 피하도록 만든다.
주인공이 먹고살도록 하려면, 일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文작가에게는 '일자리를 묘사할 실력'이 없다. 그래서 文작가는 하늘이 동아줄을 내리듯(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세금'을 내려 주인공을 먹여 살린다. 막 쓰니 재정이 바닥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文작가는 개의치 않는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으면 하늘에서 동아줄을 내리면 되고, 재정이 바닥나면 빚을 내면 된다.
총생산 대비 40% 빚도 좋고, 60%도 좋다. 그 이상도 상관없다. 文작가는 작품성 따위를 생각하지 않기에 무엇이든 동원할 수 있다. 文작가의 말씀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 40% 근거가 무엇입니까?"를 "하늘이 내려줄 동아줄이 없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라는 말로 바꾸어 보면 작가로서 그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대하 역사 작품 '대한민국'은 망가져서 삼류가 된다.
매일신문 / 조두진 논설위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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