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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국민연금은 정권연금 아니다, 기업인 일탈 제재는 法으로

by 진밭골 2019. 3. 28.



  대기업 경영 구조 개입에 나선 국민연금의 반대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등기이사 직을 박탈당했다. 국민연금 반대에 일부 외국인·소액 주주들이 가세했다. 국민연금이 개입해 민간 기업의 오너 경영자를 이사회에서 축출한 첫 사례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방침을 정해놓고 있어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다.

  조 회장은 270억원 규모 기업 이익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자녀들을 경영에 참여시켜 '땅콩 회항' '물컵 갑질' 같은 일탈 행위가 벌어지게 한 책임도 있다. 조 회장은 지난 20년간 대한항공 자산을 3배 불리고 6년 연속 항공화물 세계 1위에 오르게 하는 등의 실적을 냈다. 반면 일련의 사태로 주주들을 실망시킨 것도 사실이다. 이날 조 회장이 물러나게 되자 대한항공 주가가 오른 것은 조 회장에 대한 시장(市場)의 실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조 회장과 똑같이 배임 혐의로 기소된 다른 기업 회장의 재선임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고 기권했다. 이 기업은 남북사업을 하던 곳이다. 어떤 잣대로 칼을 휘두르는지 모호하다.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 대전제는 국민연금이 정부를 포함한 어떤 세력으로부터도 독립돼 철저히 수익률의 관점에서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선진국과 달리 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영위원장을 겸임하는 등 정부가 국민연금을 지배하고 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을 국민연금을 동원해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은 노후 보장을 위해 보험료를 내고 있는 것이지 정권이 힘자랑하라고 보험료를 내는 것이 아니다. 이러다 대한항공 경영이 악화되고 국민연금 수익률이 떨어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기업인 일탈은 관련 형법, 상법 등으로 제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정권연금이 아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