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한국의 재벌들은 관료와 정치인을 포획하고 언론마저 장악했다”며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좌파단체 회의나 정치 집회가 아니라 세르비아에서 열리는 공정경쟁 관련 국제회의에서 발표할 기조연설문에서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재벌의 경영권이 2세를 지나 3세로까지 승계되면서 이들은 창업자들과는 달리 위험에 도전해 수익을 창출하기보다는 사익 추구 행위를 통한 기득권 유지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대기업 오너 체제를 싸잡아 비난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대기업의 역할과 강한 오너 시스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경제력 집중의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재벌의 성장이 경제 전체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으며 고용의 대부분을 창출하는 중소기업의 성장마저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상위 10대 재벌의 자산총액이 GDP(국내총생산)의 80%에 달하는데도 이들에 의해 직접 고용된 사람은 94만 명(3.5%)에 불과하다”는 대목도 축적 개념인 자산총액과 매년 집계하는 GDP를 비교하는 것이 난센스일 뿐 아니라 납품 물류 서비스 등의 과정에서 직접 고용의 몇 배에 달하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생긴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 억지 주장이다. SK하이닉스가 경기 이천에 건설하는 M16공장 한 개만으로도 35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게 서울대 경제연구소의 추산이다.
이처럼 그의 연설문은 부적절하고 편향된 표현은 물론이고 사실관계도 옳지 않다. 특히 관료 정치인 언론이 재벌에 포획되고 장악당했다는 부분은 개인적 견해인지, 공정위원장으로서의 공식 견해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내용도 문제지만 나라를 대표해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이런 일방적 주장을 거리낌 없이 펴는 그의 공직관이 더 의심스럽다. 세르비아를 포함해 독일 동유럽 지역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유럽 일본 중국 등과 치열한 판매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장관급 인사가 이런 기업들이 한국에서는 사회적 병리현상 취급을 받는다며 침을 뱉은 것이다. 이를 들은 다른 나라 공무원과 경제인들이 자신들이 대할 한국 기업들을 어떻게 보겠는가. 본인이 어떤 정책적 지향성, 의도를 갖고 있든 장관이라면 때와 장소, 상황을 가려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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