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던 공직자와 민간인 등을 무더기로 수사 의뢰했다. 우리는 교육부의 이 같은 조치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현 정권의 반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수사 의뢰된 공직자들이 사법 처리를 받을 만한 범죄나 비리를 저질렀는지 수긍하기 어렵고, 정책을 수행한 공직자들에게 이런 식의 책임을 묻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회의감도 든다.
8일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를 마무리하면서 청와대 관계자 5명과 교육부 공무원 8명, 민간인 4명 등 총 1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교육부 및 소속기관 공무원 6명에 대해서는 징계를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어떤 공직자라도 업무 과정에서 해서 안 될 짓을 저질렀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밝힌 이들의 위법·부당행위가 참으로 애매하다. ▷불법적인 국정화 여론 조성·조작 ▷국정화 비밀 태스크포스 부당 운영 ▷청와대 개입에 따른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 부당 처리 ▷교과서 편찬집필 과정의 위법·부당 ▷국정화 반대 학자 학술지원 불법 배제 등이다. 항목 하나하나를 살펴보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악(惡)으로 규정해 놓고 이에 부역한 행위 전체를 불법으로 재단했다는 인상마저 든다.
교육부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이런 행위들을 엄중한 비리나 범죄로 보기는 어렵다. 전 정권의 국정 핵심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공직자들이 윗선에 잘 보이려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했을 수 있지만,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금품 비리에 연루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행위를 사법 처리 선상으로 끌고 가는 것은 무리한 시도가 아닌가.
교육부 태도를 보면 정치 보복 논란이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정부 정책을 수행한 일선 공직자들이 정권 교체 이후 처벌되는 전례가 생긴다면, 앞으로 과연 어느 공직자가 열심히 일하려 들겠는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정교과서는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력 횡포’라고 공식 사과했는데, 지금 교육부가 하는 행동도 권력 횡포일 수 있다.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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