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에서 공화진영이 프랑코에게 패배한 이유는 군사적 무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내분(內紛)이다. 이를 주도한 세력이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스페인 공산당이다. 공화진영에 군사고문단과 다량의 무기를 지원해준 스탈린의 의도는 스페인의 민주화가 아니라 ‘공산화’였다. 공화진영을 도와 프랑코 반군에게 승리한 뒤 공화진영 최대 세력이었던 무정부주의자를 포함, 공산당이 아닌 모든 정치 세력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스페인에 파견된 소련 군사고문단의 육군 담당 블라디미르 E. 코레프가 모스크바에 보낸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백색분자들(프랑코 반란군)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나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와의 싸움이 절대적으로 불가피할 것이다. 이 싸움은 매우 잔혹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이 싸움을 백색분자들과 한창 싸우고 있을 때 시작했다. 그 수법은 매우 비열했다. 공화진영이 무기 대부분을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공산당 소속이 아닌 공화군 병사에게는 지급하지 않았고, 부상자는 병원 치료도 못 받게 했다. 그리고 공산당을 지지하지 않는 정파는 탈주자, 반역자, 스파이로 몰아 처형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때 트로츠키의 비서를 지낸 안드레스 닌과 그가 이끌던 마르크스주의통합노동자당(POUM)의 숙청이다. 닌은 트로츠키와 이미 결별했음에도 공산당은 그를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고문 끝에 살해했다. 당시 POUM 민병대에 자원입대했던 조지 오웰도 그렇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 이러한 ‘내전 속의 내전’은 공화진영의 총체적 사기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지금 이 땅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핵실험에다 각종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는데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내부의 적’ 때려잡기에 정신이 없다. 그 범위는 전(前), 전전(前前)도 모자라 전전전전전전전(前前前前前前前), 전전전전전전전전전(前前前前前前前前前) 대통령으로까지 소급한다. 모두 ‘문빠’들이 증오하는 전직 대통령들이다.
청산 대상 적폐도 무한정이다. 적폐로 찍으면 무조건 적폐다. 다른 이유는 없다. 아산 현충사에 걸린 전직 대통령의 휘호도 적폐가 된 까닭이다. 세계가 찬탄하는 새마을운동도 적폐로 모는 마당이니 새마을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전직 대통령의 휘호를 적폐로 찍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재청장은 눈치가 너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말 대로라면 그런 적폐를 없애라고 문화재청장을 시켜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안보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여건이 못 된다”고 했다. 지난 7월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없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이렇게 무력해도 내부의 적 때려잡기에는 힘이 펄펄 넘치는 게 문 정부다. 밖에 나가서는 찍소리 못하면서 안에서는 큰소리치는 못난 가장의 모습 그대로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난제들을 풀어낼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안보 상황을 우리가 주도할 수 없다면서도 “내부가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한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걷는 것 같지만, 사실은 뒤로 가는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moon walk) 춤 뺨치는 말의 기예(奇藝)다. 내부 결속과 단합은 문 대통령이 앞장서 깨뜨리고 있지 않은가?
영국 역사학자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 내전-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에서 “프랑코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별로 한 역할이 없다. 공화군의 용기와 희생을 헛되이 낭비함으로써 전쟁을 패배로 몰고 간 것은 공화군 지도부였다”고 했다. 공화진영은 스스로 무너졌다는 거다.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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