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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法과 멀어지며 최악으로 가는 朴 전 대통령 재판

by 진밭골 2017. 10. 17.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법정에서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과 재판에 대한 심경을 처음으로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자신의 구속과 재판은 정치 보복이며 향후 재판부 판단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발언 직후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며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특검 수사에는 응하지 않았고 자신의 책임도 "모른다"는 식으로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이 시작된 후에는 재판 지연작전을 편다는 의심을 샀다. 실제 과도한 증인 신청을 했다. 여기엔 1심 구속 재판 기한(6개월)인 16일이 지나면 풀려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주도한 사건이고 여기에 끌려들어간 기업, 동원된 공직자들은 대부분 피해자 성격이 짙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사실엔 침묵하다 자신의 구속 연장이 결정되자 '모두 내 탓'이라고 한다. 이미 일부 사람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후다. 만시지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이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뒤늦은 항변에 이해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형사소송법이 1심 구속 재판 시한을 정한 것은 판결 선고 이전에 구속이 장기화돼 피고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때까지 재판을 못 끝내면 풀어주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검찰과 법원은 편의대로 구속 기간을 연장하는 편법을 써왔다. 이번 사건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 앞서 다른 피고인들의 구속 기간이 이런 식으로 줄줄이 연장됐다. 박 전 대통령 구속 연장을 결정한 것도 법리가 아니라 풀어줄 경우 벌어질 사태에 대한 정치적 고려 때문 아니냐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앞서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체적 청탁은 없었다면서도 '마음속 청탁'을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의 이런 모습이 '정치 재판'이라고 반발할 빌미를 준 것은 아닌가.

  이 사건은 복잡하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위한 각종 지원에 기업을 동원한 것이다. 사건의 본질은 강요 내지는 공갈에 가깝다고 보는 법조인이 많다. 그런데도 검찰과 특검은 이를 무리하게 뇌물죄로 기소했고, 정부는 뇌물죄 유죄를 받는 것을 국정 과제 1호로 내세우고 있다. '강요'보다 '뇌물'이 '더 큰 죄'라는 것 이상의 이유는 없을 것이다.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 연장 결정이 있기 하루 전 또 청와대 캐비닛에서 세월호 문건을 찾았다면서 특별 생방송 기자회견까지 했다. 구속 연장을 위한 판사 압박이자 여론전이란 것 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이 사퇴하면 국선 변호인이 이 사건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국선 변호인이 10만 쪽이 넘는다는 기록을 새로 다시 읽고 재판에 임할 수 없다. 결국 재판이 어려워지면서 또 6개월이 흐를 가능성이 있다. 이미 정치화된 재판이 법률과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는 앞으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갈등과 혼란이 정리되는 게 아니라 더 커질 것이다. 판사를 제외한 모두가 재판에서 손을 떼야 하며 권력을 가진 측이 먼저 그래야 한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