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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노파와 정약용

by 진밭골 2017. 1. 28.

다산(茶山)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때, 형에게 쓴 편지엔 주막집 노파 이야기가 나온다.

천주교 신자에 국사범이라 그런지 하루종일 대화의 상대가 없던 그에게 주막집 노파가 말을 걸었다.

“나으리께선 글을 많이 읽으신 분이니 감히  여쭙습니다. 부모의 은혜가 같다고는 해도 제가 보기에는 어미의 수고가 훨씬 더 큽니다.

그런데 성인의 가르침을 보면 아버지는 무겁고 어머니는 가볍게 여깁니다.

성씨도 아버지를 따르고 상복도 어머니는 더 가볍게 입습니다.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닙니까?”

“아버지께서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 아닌가? 어머니 은혜가 깊다 해도 천지에 처음 나게
해 주신 은혜가 더욱 중하기 때문이네.”

“제 생각은 다릅니다요. 초목으로 치면 아버지는 씨앗이고 어머니는 땅이겠지요.

씨를 뿌려 땅에 떨어뜨리는 것보다 땅이 양분을 주어 기르는 공은 더욱 큽니다.

아무리 그래도 밤의 씨앗은 자라서 밤이 되고 벼를 심으면 벼가 됩지요.

몸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 땅의 기운이지만, 마침내 종류는 씨앗을 따라 갑니다.

옛날 성인께서 가르침을 세워 예를 만들적에도 아마 이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할멈, 내가 오늘 크게 배웠네 그려. 자네 말이 참 옳으이.”

배운 것은 하나도 없지만 삶의 현장에서 깨달은 노파의 말에 정약용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다.

한 노파가 당대 최고 석학의 사상과 철학을 다듬는 계기가 되었고, 다산은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며 그 가운데 얻은 지혜로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신분을 넘어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다산의 자세야 말로 훌륭한 유산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이치를 스승으로 삼았던 다산의 모습이 우리 사회 지도자들에게도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배경락 목사 / 서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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