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 단

아르헨티나, 영국, 대한민국

by 진밭골 2011. 1. 24.

아르헨티나, 영국, 대한민국

      “선거에 먹혀드는 정책만 남발,

        국민들에게 식권 나눠주게 생겨”

                                                                                                           변호사   전 원 책


 1940년대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 부국(富國)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에서는 처음으로 경제적으로 도약한 나라였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15억달러의 준비금을 비축했고 임금은 서유럽수준에 이르렀으며 법치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번영한 나라였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성장으로 두터워진 중산층 때문에 사회는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그 무렵 남미는 군사 쿠데타가 유행처럼 번졌다. 아르헨티나도 1943년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후안 페론 대령은 군사정부의 노동부 장관이었다. 그는 노조와 결탁해서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대중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그가 내세운 것은 ‘정의주의’(正義主義)였다. 군사정부는 그를 감옥에 처넣었지만 페론의 정부(情婦) 에바 두아르테는 노동자를 궐기시켜 그를 구출해냈다. 페론은 1945년 선거에서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다음은, 복지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무분별한 정부의 확대가 멀쩡한 나라를 어떻게 파산시키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다.

 페론은 국민들에게 ‘즉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노동자들은 유급휴가를 즐기면서 한 달치 봉급을 더 받았다. 주거와 의료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공공 서비스 지출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페론은 금융, 통신, 철도, 전기, 항공, 강철 등 주요 산업을 모조리 국유화했다. 정부는 비대해졌으며 국민들은 북유럽식 ‘복지국가’의 환상에 젖었다.

 

 그러나 불과 6년 만에 준비금은 완전히 탕진됐고 국유화한 기업들의 생산성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나라 전체에 돈이 말라버려 세금을 거둘 곳도 없었다. 그런데도 한번 커진 복지 수요를 줄일 수도 없었다. 국민들은 정부에 끝없이 손을 내밀었다. 페론은 이제 돈을 마구 찍어대기 시작했다. 임금이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돈의 가치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만성적인 악성 인플레이션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르헨티나를 집어삼켰다. 사람들은 수레에 돈을 가득 싣고 가서야 먹을 것을 살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그 뒤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선동정치의 결말은 너무 비극적이었다.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이 파놓은 중우정치(衆愚政治)의 함정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여실히 증명한 경우다.


 아마 영국이 그런 함정에서 헤어나온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거기엔 마거릿 대처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있었다.

 영국의 ‘복지 병’은 195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노동당 정부는 ‘보편적 복지’를 확대했다. 노조는 정부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며 정권을 교체시켰다. 20년이 지나 영국이 늙고 병들어 무기력한 나라로 전락했을 때 마거릿 대처가 ‘혁명’을 일으켰다.


 그녀는 제1의 권력을 누렸던 광산노조를 와해시켰으며 인쇄공노조의 항복을 받아냈다. 철도, 통신, 항공 등 적자투성이 공기업들을 국민주를 도입해 민영화해 생산성 높은 알짜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임대주택을 과감히 불하해 정부 부담을 줄였다. 정부 지출이 줄자 담세율은 35%에서 24%로 크게 낮아졌다.

 대처는 마지막 영국병으로 남아 있는 의료서비스(NHS) 부문을 미제로 남긴 채 거의 모든 부문의 개혁을 이뤄냈다. 나중에 블레어 노동당 정부조차 대처의 정책을 이어받았다. 영국은 늘어난 정부 지출을 줄이는 데 성공한 첫 사례가 되었다. 작년 영국 의회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대처의 동사을 건립했다.


 어느 나라 어느 정치인이든 꼭 필요하더라도 인기 없는 정책은 뒷전이다. 우선 선거에서 이기고 봐야 하니 사람들에게 먹혀들 정책만을 찾는다. 친서민이니, 무상 급식, 무상 의료, 무상 보육이니 하는 정책들 역시 마찬가지다. 온갖 달콤한 약속들이 난무한다. 뻔한 낭비 부분이 보여도 한 번 늘어난 정부 지출을 줄이자는 말은 언감생심 꺼낼 수도 없다.

 그러니 대통령선거 몇 번 더 치르면 군 복무기간은 다시 절반으로 줄 판이고, 전 국민들에게 점심으로 식권을 나눠주게 생겼다. 중우정치의 검은 함정이 저 앞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