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댁 아침에 옷고름 풀다.
임계댁은 시집온 지 1년 만에 과부가 됐다.
자식도 없는 청상과부는 한눈 안 팔고 시부모를 모시고 10년을 살다가 한해걸이로 시부모가 이승을 하직, 삼년상을 치렀다.
탈상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매파가 찾아왔다.
“아직 서른도 안된 임계댁이 자식도 없이 홀로 한평생을 보내기엔 세월이 너무 길잖아.”
임계댁은 눈이 동그래져 “그래서요?” 하고 물었다.
한숨을 길게 쉰 매파가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를 이어갔다.
“아랫동네 홀아비 박초시가 임계댁 탈상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네.”
“나가세요!”
서릿발이 돋은 앙칼진 목소리로 임계댁이 소리치자 매파는 겁에 질려 허둥지둥 뒷걸음쳐 사라졌다.
임계댁은 늙은 청지기를 데리고 억척스럽게 논농사, 밭농사를 지으며 의젓하게 수절했다.
임계댁도 박초시를 알고 있다. 8년 전인가 상처한 박초시는 30대 초반으로 비록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했지만 글도 능할뿐더러 뼈대 있는 집안에 재산도 넉넉하고 사람 됨됨이도 착실해 매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찾았지만 모두 고개를 흔들고 임계댁만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박초시가 보낸 매파가 끈질기게 임계댁을 찾았지만 가는 족족 헛걸음에 이제는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박초시는 식음을 끊고 드러누워 버렸다. 소문이 좍 퍼졌다. 박초시 친구 유서방이 술을 한잔 걸치고 찾아왔다.
“야, 이 사람아. 그런 일로 드러눕다니!”
이튿날 아침.
임계댁이 아침 연기 모락모락 피어 안개처럼 깔리는 안마당으로 물동이를 이고 들어서 부엌으로 가는데 유서방과 유서방네 머슴 둘이 뒤따라 들어왔다. 유서방이 안마당에서 소리친다.
“임계댁, 오늘 쟁기 좀 빌려주시오.” 임계댁이 부엌에서 나오는데 안방 문이 덜컹 열리며 윗도리를 드러낸 박초시가
“안되네, 우리도 오늘 써야 하네.”
머슴 둘도 놀랐지만 펄쩍 뛰며 놀란 것은 임계댁이다. 따지고 변명할 겨를도 없이 유서방과 두 머슴은 가버렸다. 늙은 청지기는 물꼬를 트러 들에 나가고 임계댁이 우물에 갔을 때 박초시가 임계댁 안방에 잠입했던 것이다.
마루 끝에 털썩 주저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임계댁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네 사람들에게 무슨 변명을 해도 씨도 안 먹힐 것 같았다. 임계댁은 머리를 매만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서방님, 절 받으시오.”
박초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임계댁, 고맙소”라고 말한 후 임계댁의 옷고름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