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은 식목일이자 寒食日(한식일)이기도 합니다. 한식일은 찬 음식을 먹는 날이라는 의미일텐데 왜 그 날을 찬 음식을 먹는 날로 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던 중 다음과 같은 유래를 알게 되어 그 유래를 함께 공유하고자 소개합니다
晉(진)나라 獻公(헌공)은 繼妃(계비) 姬(여희)의 모함에 빠져 전처 소생인 첫째 아들 申生(신생)을 죽이고둘째 아들 重耳(중이)는 죽음을 피해 유랑 길에 세째 아들 夷吾(이오)도 秦(진) 나라로 도망하였다
둘째 아들 重耳(중이)는 그를 추종하는 약간의 무리와 함께 변방에서 방랑생활을 할시에 그들은
식량이 없어서 고사리로 근근히 연명해야 했다
그러나 귀족 생활에 몸이 베인 重耳(중이)는 고사리를 잘 먹지 못하였다
이에 그 무리 중의 한사람인 介子推(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내어 그 허벅지 살로
고깃국을 끓여 重耳(중이)에게 대접하는 등 충성을 다 하였다
훗날 秦(진)나라의 도움으로 重耳(중이)는 晉(진)나라 새 임금 文公(문공)이 되었다
새 임금이 된 文公(문공)은論功行賞(논공행상)
으로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지난 날의 기나긴 방랑생활 기간 동안에 자신에게 충성을 다 바쳤던
介子推(개자추)에게 벼슬을 내리는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이에 실망한 介子推(개자추)는 세상을 등지고 노모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晉(진) 文公(문공)은 사람을 보내어 介子推(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였으나 介子推(개자추)는 산에서 내려 오지 않았다
晉(진) 文公(문공)은 그를 산에서 내려 오도록 하기 위한 방책으로 산에 불을 질렀다
그 때가 冬至(동지)에서 105일 째 되는 1년 중 가장 건조한 날이어서 불은 삽시간에 산 전체에 번졌으나
介子推(개자추)와 노모는 결코 산을 내려가지 않고 包木燒死(포목소사 : 나무를 끌어 앉고 불에 타 죽음)하고 말았다
또 한번의 잘 못을 저지른 文公은 크게 후회하고 그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이 날만이라도 불을 피우지
않게 하여 찬 음식을 먹었다 하여 이 날을 寒食日(한식일)이라 하게 되었다
사람이 한평생 사는 동안 이러저러한 사유로 타인에게 은혜를 주기도 하고 또 타인으로 부터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고 받은 은혜에 대해서 佛家(불가)에서는 남에게 은혜를 주었거던 그 주었던 사실조차 잊어 버리고 받은 은혜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는 가르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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