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욕심쟁이 나무꾼 최가가, 숫송아지 한마리를 사 와서 길렀다.

송아지가 중소도 되기 전에 최가는 나무를 한 바리씩 소 등에 싣고 채찍을 휘둘러댔다.

두어 해가 지나자 최가네 소는 우람한 황소가 되었다.

지난해 겨울 어느 날, 장에 가서 나무를 팔고 난 최가는 술을 잔뜩 마시고 황소 등에 타자마자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황소를 타고 집으로 오던 최가는 너무 술이 취해 황소 등에서 떨어져 눈밭에 처박혔다. 밤은 깊어 가고 칼바람은 살을 에는데 오가는 사람도 없는 고갯길에서 최가는 눈 속에 파묻혀 코만 골고 있었다. 황소가 주둥이로 주인을 밀어도 최가는 깨어나지 못했다.

황소는 쿵쿵 뛰어서 고개를 넘고 내를 건너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렁우렁 큰소리로 울면서 앞발로 마당을 찼다. 최가 부인이 앞뒷집 남정네들을 불러내 횃불을 들고 황소를 따라가 얼어 죽기 직전의 최가를 살려냈다. 이틀 만에 일어난 최가는 황소가 자신을 살려 줬다고 고마워하기는커녕 술 취한 주인을 떨어뜨렸다고 오히려 채찍질을 했다.

가을은 나무꾼들에게는 대목이다. 힘이 장사인 최가는 해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산속으로 들어가 욕심껏 도끼질 톱질로 참나무를 베어냈다. 그때 촘촘한 나무 사이에서 냉기가 흐르며 최가의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쉬익! 호랑이였다.

도끼를 든 최가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낙엽 진 나뭇가지 사이로 초승달만 걸린 밤,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서, 호랑이는 서두르지 않았다. 집채만 한 호랑이는 느긋하게 몸을 틀었다.

바로 그때 콧김을 내뿜으며 황소가 주인 앞을 가로막았다.

牛虎相搏 우호상박...

황소는 뿔로 호랑이를 받고, 호랑이는 발톱을 앞세워 황소를 공격했다.

비겁한 최가는 그 틈을 타 오줌을 설설 싸며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쳐 산을 내려왔다.

도끼를 휘둘러 조금만 황소를 도와줬더라도 싸움은 길지 않았을 텐데, 황소와 호랑이는 산이 떠나갈 듯, 포효하며 오래도록 싸웠다.

삼경이 되어서야 피투성이가 된 황소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날이 새자 최가는 쇠뿔에 받혀 죽은 호랑이를 가지고 내려와 비싼 값에 고기는 고기대로, 가죽은 가죽대로, 뼈는 뼈대로 팔아, 주머니를두둑이 채웠다.

황소는 호랑이와 싸우다 한쪽 눈알이 빠져 애꾸가 되었고, 호랑이 이빨에 물려 앞다리를 절었다. 배은망덕한 최가는 쓸모없어진 황소를 도살장으로 끌고 갔다. 댓걸음 앞도 안 보이게 두꺼운 가을, 안개가 낀 날 아침, 최가는 황소 고삐를 잡고, 개울 위 외나무다리로 들어섰다.

점심 무렵 안개가 걷히자, 가을 가뭄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개울에는 최가가 배가 터진 채 엎어져 있었고, 애꾸눈 황소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