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을 지나가던 양반이 걸음을 멈추고 어느 집 앞 감나무 그늘 아래 앉아 이마의 땀을 닦으며 부채를 폈다. 나른한 한낮의 열기에 만물이 축 늘어져 있는데 양반의 발 옆에 강아지 한마리가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 있었 다.
무심코 내려다보던 양반의 눈길이 개밥그릇에 딱 멎었다. 먹다 남은 개밥이 말라붙고 또 말라붙어 꼬질꼬질했지만 이게 보통 물건이 아니다. 가만히 다가가 자세히 봤더니 연화문고려청자접시가 아닌가! 강아지 옆으로 서너걸음 떨어져 이 세칸 초가집 주인인 듯한 꾀죄죄한 사팔뜨기 노인네가 맷방석에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양반은 얼른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아 눈길을 돌리고 장죽을 꺼내 물었다. 횡재수가 생긴지라 그의 가슴은 쿵쿵 뛰었다. 양반은 시치미를 떼고 “노인장, 오늘은 더위가 대단합니다그려. 물 한사발 얻어마실 수 있겠소이까?” “그러시구려.” 사팔뜨기 노인은 일어서서 자박자박 부엌으로 걸어가 물 한사발을 떠왔다.
단숨에 물을 마신 양반은 다시 감나무 그늘에 앉아 올 농사가 어떠냐는 둥 이 얘기 저 얘기 시시껄렁하게 노인에게 말을 걸다가 “이 강아지가 눈빛이 초롱초롱하니 싹이 보입니다그려.” 사팔뜨기 노인은 대꾸도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이놈을 잘 훈련시키면 멧돼지 멱을 물고 늘어지겠는데….”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던 양반은 사팔뜨기 노인을 보고 “이 강아지 제게 파시오. 후하게 값을 쳐줄 터이니.”
노인은 “파는 강아지가 아닙니다요.” 하던 일에 매달려 건조하게 대답했다.
“노인장, 그러지 마시고 내 열냥을 드리리다.” 열냥이면 개장국집에 팔려가는 큰개값이다.
“고개 넘어 장터에 가면 강아지 장수들이 널려 있으니 거기 가서 사시오.” 양반은 달아올랐다.
“스무냥!” 사팔뜨기 노인은 고개를 젓는다. “서른냥!” “마흔냥!” “쉰냥 여기 있소이다. 이 강아지 데려갑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선 노인이 쉰냥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별 양반 다 보겠네. 그 강아지가 그렇게 갖고 싶으면 데려가시오.” 양반은 활짝 웃으며 “고맙소이다 노인장.” 양반이 강아지를 안고 슬그머니 개밥그릇도 집어 들자, 노인네가 “나는 강아지만 팔았지 밥그릇까지 판 것은 아니외다.”
딱 부러지게 말하며 개밥그릇을 낚아챘다. “이까짓 개밥그릇 끼워서 주지 않고….” “이까짓이라니, 연화문고려청자접시는 우리 집 가보요!” 양반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떠나자 사팔뜨기 노인은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얘야, 낚싯밥이 떨어졌다.” 며느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강아지 한마리를 안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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